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태풍의 교훈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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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9. 9)
원현린 칼럼 /
태풍의 교훈
온 세상 사람들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아 가다가 한 지방의 들판에 이르러 “어서 벽돌을 구워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사방에 알리자”고 했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안 되겠다고 판단한 여호와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쌓던 탑을 그만두고 흩어졌다. 신은 하늘을 향해 치받아 도전해오는 바벨탑을 용납하지 않았다.
필자가 오래전 처음으로 미국 뉴욕에 갔을 때이다. 맨해튼에 치솟은 마천루(摩天樓)를 바라보면서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지금 인천 송도를 자칭(自稱) ‘한국의 뉴욕’이라 부르며 맨해튼의 빌딩과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이 시각에도 고공높이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다.
모래위에 지어진 건물을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 하여 부실의 대명사로 부르고 있다. 분수를 모르고 무리하다가 종국에는 무너지고 깨지고 갈라지고 하여 풍비박산 난 사례는 많다.
튼튼히 지어진 건물은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흔들림이 없어야한다. 며칠 전 태풍 ‘곤파스’가 한번 훑고 지나가자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가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위용을 자랑하던 문학경기장 건물의 지붕이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아파트의 유리창이 파손됐다. 수확을 눈앞에 둔 과수며 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가로수는 성한 것이 없을 정도로 뿌리가 뽑히고 쓰러졌다.
이러다간 대형 건물도 쓰러질 수 있겠구나 하는 걱정을 해봤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기고 달리던 열차가 땅속에 처박히곤 하는 나라니까.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속도전을 하듯 마구지어대고 있는 우리의 건축물들이다. 미국인들은 벽돌 한 층을 쌓고도 굳기를 기다린다.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리의 경우 하룻밤만 자고 나면 여기저기 대형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과연 이 건물들의 견고성에는 이상이 없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건물에 비가 샜다.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신도시 송도의 이미지를 흐려놓은 것이다. 우리의 건축법 등은 잘 정비돼 있다. 법 규정대로만 하면 큰 탈이 없었을 게다. 하기야 국가의 도장인 국새(國璽)제작과정에서까지도 포함시켜야 할 주요성분을 빼먹는 우리나라다.
태풍은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온다. 갑자기 급습하는 것이 아니다. 예고하고 찾아온다. 미욱한 우리만이 이를 모르고 해마다 반복해서 피해를 당하곤 한다. 사후에 피해를 분석해보면 웬만큼은 예방 가능한 피해들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우리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잃고 살고 있다. 곤파스에 이어 올라오던 9호 태풍 ‘말로’가 다행히 한반도를 비켜갔다. 위력이 대단하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시민들이나 당국도 이렇다 할 대책은 없었다. 만약 이 태풍이 인천을 관통했더라면 우리는 전과 같이 천재지변 운운하며 또 다시 당하기만 했을 것이다.
재해예방체계를 보면 그 나라가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알 수 있다했다. 그 나라가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는 국민소득의 높고 낮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비상체제가 어느 정도 잘 돼 있느냐에 달려있다.
매사 기초 튼튼히 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 인천은 송도, 영종, 청라 등지를 비롯 구도심 재개발 지역에 숱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제부터 축조되는 건축물은 폭우가 쏟아져도 물이 새지 않고 강풍이 불어도 지붕이 무너지거나 유리창이 깨지지 않도록 지어져야 하겠다.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태풍, 곤파스가 아무리 강풍이라 하지만 튼튼히 지어진 건물의 유리창은 멀쩡했고 단단히 고정된 입간판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무른 땅에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는 가차 없이 쓰러져 갔고 뿌리 깊은 나무는 의연히 서 있었다. 이것이 태풍이 남긴 교훈이다.
원현린 칼럼 주필
2010년 09월 09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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