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푼주의 송편맛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0. 9.20)
오광철의 전망차 /
푼주의 송편맛
‘푼주의 송편맛이 주발뚜껑 송편맛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푼주란 자배기처럼 아가리가 넓은 그릇을 말한다. 그러니까 양만 많을뿐 오붓한 정이 담겨있지 않다는 뜻이다. 숙종 임금의 미행에 얽힌 이야기이다. 어느날 밤에 남산골에 갔을 때이다. 낭낭히 글읽는 소리가 들리는 오막살이 들창을 엿보았더니 주발 뚜껑의 송편 두개를 젊은 양주가 정답게 나누어 먹고 있었다. 부부의 애정에 감동하여 돌아와 송편이 먹고싶다고 말했더니 이튿날 송편을 빚느라고 소란이었다. 한참 후 송편이 들어오는데 큰 푼주에 높다랗게 괴어진 것이었다. 전날밤의 환상은 깨지고 울컥 환멸이 치민 임금은 송편 그릇을 내동댕이 치며 소리쳤다. “송편 한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라는 말이냐.”
송편은 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하여 속을 넣고 예쁜 반달 모양으로 빚어 솔잎을 켜마다 찐 떡이다. 솔잎을 까는 것은 떡끼리 들러붙지 않고 떡에 솔향기가 배어 한층 맛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추석 전날 휘영청 밝은 밤 아낙들이 모여앉아 빚었는데 누가 예쁘게 빚었는지 내기를 했다. 특히 처녀는 잘 빚어야 신랑을 잘 얻는다고 했고 아기를 가진 아낙은 예쁜 딸을 낳는다고 했다. 특히 송편은 쑥과 송기 따위로 다섯가지 빚깔을 내어 화려하게 빚었다. 왜 보름달을 닮듯 둥글게 만들지 않고 반달 모양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송편은 추석에만 먹는 떡이 아니었다. 음력 2월 초하루에도 송편을 빚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볏가리에서 벼이삭을 내려다 낟알을 떨어 송편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종들에게 나이수대로 먹였다. 그래서 이날을 노비일이라고 했다. 송편은 아기들의 백일상이나 돌상에 올렸고 글방의 책거리때도 내놓았다. 송편처럼 실속있고 학문이 깊은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송편은 추석의 절식이요 모레가 추석이다. 곳곳에서 홀몸노인을 돕고 새터민과 나누어 먹는 송편 빚기가 한창이라는데 막상 가정에서는 송편 빚는 일이 시들하다. 젯상에 올리는 송편도 떡집에서 사온다. 기계로 뽑는 떡이 맛있을 리도 없고 천상 푼주의 송편맛이겠다.
2010년 09월 17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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