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죽산 51주기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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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0. 7.30)
조우성의 미추홀 ( 605 )/
죽산 51주기
인천 출신으로 남북에서 집권했거나 그에 도전했던 정치인은 세 명이었다. 장면, 이승엽, 조봉암이 그 주인공이다. 장면은 부통령, 내각수반을 역임했고, 초대 농림부장관을 역임한 조봉암은 두 차례나 대통령 후보로서 기염을 토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장면은 동성고 교장으로 있다가 광복 후 정계에 입문해 유엔총회 한국 대표, 초대 주미대사, 부통령 등을 역임했고, 4·19혁명 후에는 내각책임제 하의 국무총리로 당선되어 집권했으나 5·16 여파로 실각했다.
공산주의자 이승엽은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부수상 등을 지냈다. 6·25전쟁 때는 서울시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1953년 김일성에 의해 '미제 간첩'이라는 혐의로 총살당하고 말았다.
'박헌영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한 후 공산주의와 결별한 조봉암은 1948년 5·10 총선거에서 당선한 후 제헌국회의원, 초대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이 되었다. 제2대,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상당수의 지지를 받아 파란을 일으켰다.
그에 위협을 느낀 자유당 정권은 진보당을 창당해 활동하며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던 그를 '간첩 양명산 사건'에 연루시켜서 사형을 집행했다. 그것이 오늘날 국가적 수치로 기록되고 있는 세칭 '사법살인(司法殺人)'의 진상인 것이다.
죽산 조봉암 51주기 추모식이 내일(31일) 망우리 묘소에서 거행된다고 한다. 최근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한 강연에서 "조봉암은 두 개의 극단적인 사상을 지양하는 중용을 표방했다"며 그를 재조명했다. 시대를 앞서간 이의 혜안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그는 무참히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의 추모식을 앞두고 비운에 간 인천 출신의 정치가들과 이 땅의 궂은 정치사를 재삼 되돌아보게 된다.
/객원논설위원
2010년 07월 29일 (목) 20: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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