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이 가을의 표주박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0. 8.19)
오광철의 전망차 /
이 가을의 표주박
공자님의 제자 안회는 학업을 좋아하고 도를 깨우치는 일에 만족했다. 그는 가난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결코 양심과 지조를 팔려고 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그의 안빈낙도를 진심으로 칭찬했다. 그것이 논어의 ‘옹야편’에 나오는 “子曰賢哉回也”(자왈현재회야)로 시작하는 “일단사 일표음 재누항…”이다.
풀이하면 “어질도다 회여 한그릇 밥과 한표주박 물로 누추한 동리에 살게되면 다른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이 변하지 않는다. 어질도다 회여”이다. 여기에 나오는 “一簞食 一瓢飮(일단사 일표음)”에서 簞은 ‘소쿠리단’이요 瓢는 ‘표주박표’이니 ‘한그릇 밥과 한바가지 물’이란 뜻이다.
표주박은 조롱박 호리병박이라고도 하거니와 바가지이되 중간이 잘룩하게 생겼다. 주전자 처럼 주둥이가 달린 고려청자를 연상하면 된다. 가을 거둘 때 여느병 같이 반으로 쪼개지 않고 속을 비어 예전에는 술이나 약을 담았다. 고려 문인 이규보의 글에 “온전한 대로 호리병을 만들어 담으니 옥같은 술이 맑구나”라고 했다. 작자미상의 옛시조에도 “학타고 저불고 호로병차고”라는 구절이 보인다. 예전 민속으로 벽사에도 쓰였다. 작은 세개의 호리병박을 빨강 파랑 노랑으로 색칠하여 어린이들이 차고 다니다 열나흘밤에 남몰래 큰길에 버리면 한해동안 탈없이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인천에는 표주박극장이 있었다. 1909년에 개관했다는데 6·25때 불탔다. 지금의 신포동 외환은행 자리요 표관(瓢館)이라고 해서 일본사람들은 ‘히사고깡’이라고 했다. 어째서 표주박의 이름을 따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인천에는 그 맞은편의 동방극장과 싸리재 애관 그리고 동인천역전의 어린이영화관(훗날 인영극장)이 있었다.
표주박이 주렁주렁 달린 사진을 보니 벌써 ‘가을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오면 언제나 단골 처럼 등장하는 장면이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명하고 입추가 지난지 열흘이 넘어 처서도 머지않으니 가을임이 분명하다. 이 가을 책이라도 몇권 싸들고 더위에 지친 몸 어디든 표표(飄飄)히 떠나보고 싶다.
2010년 08월 19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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