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다목적 원두막(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0. 6.10)
오광철의 전망차 /
다목적 원두막
우리말에 ‘원두한이 쓴 외 보듯한다’는 속언이 있다. 평소에 오이를 가꾸는 사람이 쓴 오이에 마음 쓸 일이 아니다. 그러니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뜻이다. 원두는 밭에 심어 가꾸는 참외 수박 오이 호박 따위를 이르는 말이요 원두한이 혹 원두장이는 그것을 부치는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원두밭은 그것을 재배하는 밭을, 원두막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밭머리에 지은 막이다.
예전에 원두막은 참외밭을 지키기 위해지었다고는 하나 굳이 불침번의 망루는 아니었다. 그것은 농민이 여름철 밭일을 하다 잠시 쉬는 휴게실이요 밤에는 서늘한 잠을 자는 침실이었다. 불침번을 자청한 나이찬 총각은 마음둔 아가씨를 불러내는 밀회장소요 낮에는 어린것들의 놀이방겸 공부방이니 다목적의 공간이었다.
그러니 남의 원두밭에서 참외 한개쯤 슬쩍 해보지 않은 악동 없고 잡히더라도 그것이 크게 허물될 것이 아니었다. 제집것 두고도 남의 밭을 더듬는 것은 짜릿한 쾌감 때문이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너댓명이 살금살금 참외밭에 침범했다. 원두막 할아버지의 담뱃대 불도 꺼져 한참후 녀석들은 밭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원두막 할아버지가 금방 잠이 드시는 것은 아니었다. ‘이놈들’하고 할아버지가 소리치시면 여기 저기서 일부러 소리를 내어 할아버지를 혼란하시게 했다. 그렇다고 붙들리더라도 훈방으로 끝나고 성공하면 다음날 모여 희희락락이요 모험담 하듯 늘어놓았었다.
원두막은 우리나라 여름철 풍물의 대표작이다. 지금 생각하면 도시인들에게 원두막은 어렸을쩍 고향의 정취이다. 농촌에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도 여름방학에 친척집에서 몇밤이고 지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언제 생각해도 원두막은 정답고 즐거운 추억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원두막은 옛것이 아니다. 공원에도 시청 광장에도 세워놓으나 옛맛이 나지 않는다.
신문 지면에 실린 원두막 사진이 시원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원두밭의 원두막이 아니라 인천대공원의 정자일뿐이다. 아무튼 요즘 낮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니 어느틈에 여름이요 고향의 원두막이 그리워지는 때이다.
2010년 06월 10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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