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차인(茶人) 큰잔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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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0. 6.16)
'차인(茶人) 큰잔치'
/( 587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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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문명의 세계로 걸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불을 다룰 줄 알게 된 이후부터다.
불로써 짐승의 고기를 구워 먹었던 것이 생존 투쟁의 시작이었다면, 물을 데워 마셨던 것은 문화생활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나뭇잎이나 오곡을 볶아 우리고 열매를 달여 마셨으리란 것은 상상키 어렵지 않다.
그 같은 수많은 연습 끝에 차(茶)가 나왔고, 신라시대에 이미 차가 널리 보급돼 있었다는 사실은 향가에도 잘 드러나 있다.
3월 3일에 경덕왕이 귀정문(歸正門)에서 초라한 옷을 입고, 등짐을 지고 남쪽에서 오는 스님 한 사람을 맞았다.
그 스님의 짐을 보니 다구(茶具)가 담겨 있었다.
네가 누구냐고 왕이 물으니, 충담이라고 대답하였다.
또 어디서 오느냐고 물으니,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다려서 남산의 미륵보살에게 공양해 왔는데, 오늘도 차를 바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충담에게 차를 요구하니 충담이 차를 다려 드렸다.
삼국유사는 충담이 드린 "차의 맛이 색다르고, 그릇 속에서 색다른 향기가 풍겼다."고 적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차를 음미하는 데는 맛과 향기가 제1이요, 더불어 차를 나누는 예법 또한 진중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그 같은 품격을 사랑하여 선조들이 차를 음미해 왔던 것인데 다산 정양용도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망하고, 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흥한다"고 하였다.
최근 제12회 '전국 차인 큰잔치'가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2세들에게 차 문화의 전통을 계승시키는 뜻 깊고 아름다운 자리였다.
/객원논원위원
2010년 06월 15일 (화) 21: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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