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감을 따는 일’이 부하들의 몫일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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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9.11.15)
‘감을 따는 일’이 부하들의 몫일까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부하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갖고 오지 않는 날이 바로 귀관들이 리더를 중단하는 날이다"라고 지적한 건 천 년도 넘고, 미국의 4성 장군 콜린 파월도 이 말을 즐겨 전했다.
일본 전국시대 병법의 신이라고까지 칭송 받았던 다께다 신켄은 ‘부하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고 소중히 여긴 장수’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전쟁터에서 병사를 배치할 때 미숙한 젊은 병사 뒤에는 노련한 노령자를 배치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젊은 병사는 혈기가 왕성하다. 이를 잘 다뤄 지나치게 저돌적인 행동 때문에 개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부하들의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이것이 염려돼 제대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정 문제를 처리한 후에 업무를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해서 신축성 있는 업무 시간제를 두기도 했다. 그 옛날에 대단히 진보적인 사고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그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장군들이 부하들과 소통이나 공감, 때로는 부하들의 입장부터 살피는 모범을 보였다.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춘추전국시대 병법가이자 장군이었던 오기는 병졸들과 똑같이 밥을 먹고 잠자리까지도 함께해서 무적의 상승군을 거느릴 수 있었다.
며칠 전 한 4성 장군 출신이 귀하신 분(?)으로 대접 받으며 야당의 영입 대상이 됐다가 삼청교육대 운운하며 몇 가지 어록을 남겨 화제가 됐다. 삼청교육대는 불법 인권침해였고, 그 비극적 참상은 이미 널리 전해졌기에 여기서는 부연하지 않겠으나 "공관병이 감을 안 따면 누가 감을 따느냐, 모름지기 군대라는 곳은 불합리한 것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신념화해서 행동해야 한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은 어떤 지휘 철학을 가졌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시대착오적 군부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건 그렇다 치고 그런 지휘관으로 보낸 긴 시간 동안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성한 국방 의무를 위해서 그런 인물 아래서 군 생활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슬프지 않은가.
그가 지휘했던 시절에 "우리 군대가 강군이었는데 이제 민병대 수준으로 전락했다"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정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물론 그 시절에 우리 군이 강군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자칫 군 복무했던 분들의 자긍심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 많은 국방비에 첨단 무기 도입을 하고서도 아직 ‘자주국방’을 이루지 못한 걸 보면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그래 강군이었다고 하자. 지금은 민병대 수준이라고 하자.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표현이 적절한지를 떠나 그런 변화가 왔다면…….
아마 박 전 대장은 지금의 군 지휘부가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인 텐데 ‘안보 수호’를 입에 달고 있는 전직 예비역 장성들이 그동안 해온 일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 민병대 수준의 장성들이 아니었는지. 아니 부하들에게 감이나 따게 하는 게 강군의 모습이었는지 뭣이 풀 뜯어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판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의 향수에 젖어서 육군이 해군·공군을 홀대하고, 육사 출신들이 다른 출신 장교들을 배척하는 건 물론이려니와 육사 출신 안에서도 하나회니 알자회니 하는 사조직을 만들어 끼리끼리 해먹는 짓을 한 걸 모르는 국민이 없는데 마치 자신은 불합리를 극복한 합리적 지휘관으로 정정당당했는데 ‘갑질하는 사령관’으로 억울하게 매도당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고밖엔 볼 수 없다.
다께다 신켄이 부장 규조에게 했던 숱한 어록 가운데서 박찬주 전 육군대장에게 전해주고 싶은 구절이 있다. 하긴 이제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을 테지만. "너희 부하들은 모두 각자가 사고력과 판단력을 가진 존재다. 마치 무나 당근처럼 뭉뚱그려서 다루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 각자가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정도 없고, 인권 의식도 없이 출세만 하면 된다는 함정에 빠진 것도 모른 채 오늘도 4성 장군이라는 허명 하나에 매달린 그 모습은 이 땅의 ‘감을 따는 일’에나 어울릴 듯싶다.
기호일보, KIHOILBO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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