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문재(77회)의 시의 마음]김장에 관한 한 생각(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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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향신문(19.12. 1)
[이문재의 시의 마음]김장에 관한 한 생각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황석어젓도 준비했음^^.” 내가 답신을 하지 않자 후배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문자였다. 후배는 지난여름부터 올해 김장을 자기 집에서 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때마다 요즘 누가 김장을 집에서 하느냐며 한쪽 귀로 흘렸다.
게다가 김장을 하기로 한 날이 원고 마감일이었다. 그런데 저 한마디에 마음이 동했다. 황석어젓이라. 나는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다. 미식가도 아니고 대식가도 아니다. 그런데 유독 젓갈 앞에서는 흔들린다.
결국 원고 마감을 지키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차를 몰아 강화대교를 건넜다. 후배는 강화 토박이가 아니다. 10여년 전, 귀촌 비슷하게 강화로 들어가 주경야독하고 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생들을 가르친다. 시간을 쪼개 지역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힘을 보태기도 한다. 몸집이 큰 데다 얼굴도 검게 타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후배가 김장을 같이하자고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얼마 전 새집으로 이사했는데 마당에다 텃밭까지 있어 배추농사를 제대로 했다는 것이다.
젓갈 때문에 솔깃했던 것만은 아니다. 돌아보니 김장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직접 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나서도 집에서 김장을 하지 않았다. 김치는 친가나 처가에서 보내오거나 가서 가져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뒤로는 마트에서 사다 먹었다. 새삼스럽지만 지난 40년 사이, 집 안에 있던 것들이 다 밖으로 나갔다. 김장에서부터 생로병사와 관련된 의례가 다 집 밖으로 나갔다.
반면, 집 밖에 있던 것들이 다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한 세대 사이에 우물, 빨래터, 마당, 변소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최근에는 강아지를 비롯한 반려동물이 들어왔다. 후배 집으로 가는 길에 돌아본 것이 또 있다.
최근 몇 년간 내가 남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 집에 손님이 온 적이 있었던가. 거의 없었다. 아랍 지역에는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저 문구가 생각날 때마다 요즘 우리 사는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돼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김장이 핑계였지만 남의 집을 찾아가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후배가 전세로 들어간 새집은 읍내 외곽, 이른바 집장사들이 지은 이층집이었다. 얼마 전 태풍이 지나갈 때 지붕 마감재 일부가 뜯겨 나갔고 비도 조금 샜다고 한다. 하지만 후배네 식구들은 마당과 텃밭이 있어 새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늦은 점심상을 치우고 다들 팔을 걷어붙였다.
마당 수돗가에서 전날 절여놓은 배추를 물에 헹구는 사이 거실에서는 김칫소를 버무렸다. 나는 “옛날에는” “우리 집에서는”이라며 간섭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하다간 큰 싸움이 벌어진다. 김장에도 무슨 절대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마땅하다.
음식과 농업, 땅에 대해 그간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자부해왔는데 40여년 만에 김장하는 자리에 앉고 보니 김치와 김장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음을 자인해야 했다. 김치는 누구나 먹는 것이지만 누구나 김치를 담그는 것은 아니다.
또 누구나, 언제든 김치를 담글 수 있지만 누구나, 언제든 김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치를 먹거나 담그는 것은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장은 다르다. 제철에 여럿이 함께한다. 김장은 마을과 가족의 큰 연례행사 중 하나다.
케이블 방송 채널을 돌릴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왜 이렇게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많은 것일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음식과 마주할 수 있다. 맛있는 집을 찾아가거나 맛있게 조리하는 법을 일러준다. 누가 더 빨리, 더 맛있게 만드는지 경쟁하기도 하고 전 세계 길거리음식을 탐방하기도 한다. 골목상권을 살려내자는 프로젝트도 있고, 백반집을 순례하는 코너도 있다.
소위 인터넷 먹방에까지 눈을 돌리면 요즘 대중미디어는 가히 ‘음식천국’이다. 그런데 저 수많은 음식 프로그램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놀랍게도 그 음식의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키워지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식탁에 오르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한국인의 밥상>과 <나는 자연인이다> 정도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농부인 웬델 베리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먹는 행위는 농업적인 행위다.” 농업은 태양의 도움 없이는, 하늘과 땅, 수많은 생명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농업의 우주적 연관성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상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식탁에서 천지자연과 연결된 그물망을 떠올리지 않는다.
우리 몸이 천지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먹거리에 관한 한 우리가 아는 최대 경로는 마트 혹은 편의점까지다.
웬델 베리가 강조했듯이 ‘먹거리 정치학’에 대해 고민할 때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통제를 받을 때 자유가 억압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먹거리와 그 원천이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우리가 얼마나 수동적인 먹거리 소비자인지를 자각하는 것이 주권자로 거듭나는 첫 단추이자 성숙한 민주사회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후배가 손수 키운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하면서 또 되뇌었다. 전환은 식탁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새로운 사회, 지속 가능한 공동체는 농업과 땅을 재발견하는 데서 탄생할 것이라고.
입력 :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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