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북벌 꽃(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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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4.15)
오광철의 전망차 /
북벌 꽃
벚꽃이 활짝 폈다. 엊그제만 해도 올망졸망 부풀었을 뿐이던 꽃망울이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고, 아침이 다르고 낮이 다르더니 그 사이에 활짝 폈다. 아파트 단지 안의 벚꽃 가로수 길이 한결 아늑하고 화사하다. 진작에 가로수를 벚나무로 수종갱신 했으면 좋을뻔 했겠다. 잠시 폈다가 이내 져버리는 벚꽃의 아쉬움이라고 하지만 원래 꽃이라는 것이 한때이니 사시절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 따로 있었던가.
일전에 남녘을 다녀온 상춘객들의 전언이 그곳에 봄꽃이 한창이라더니 마침내 이녘에도 봄이 무르익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차례 심술궂은 꽃샘추위에도 꽃눈들은 무사했었다. 경인지방의 처음으로 벚꽃 개화기가 4월11일이라니 꽃샘에도 방해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에도 봄은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출근길의 화제가 온통 꽃이야기이다.
일본 국민들은 벚꽃이 자기네 국화라며 유난히도 벚꽃을 사랑한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우리의 혼을 말살하려 우리 궁궐에 가꾸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치가 않다. 그러는 바람에 해방직후 우리나라에서 구박(?)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일본의 국화는 그냥 벚꽃이 아니라 왕벚꽃이요 그 고향이 우리나라라는 것이다. 우리의 남쪽 끝 제주도가 왕벚꽃의 원생지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우리나라의 자생종만도 10여종이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왕벚꽃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1908년 우리나라에 와있던 프랑스 신부가 한라산에서 처음 왕벚꽃나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사학자 문일평도 벚꽃이 우리나라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거의 그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었다. 당시 서울 근교의 명소이던 우이동의 벚나무는 꽃을 위해 가꾼 것이 아니라 병자호란때 볼모로 잡혀가 치욕을 겪은 효종이 북벌을 계획할 때 궁재로 사용하려고 심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벚꽃을 일명 ‘북벌꽃’이라고 했다고 한다. 옛날 벚꽃나무가 활의 재료가 되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며칠후 벚꽃은 일시에 지느라 서운하겠다. 그러나 울안의 개나리와 목련등이 뒤를 잇겠다.
2010년 04월 15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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