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랑은 연기하지 말라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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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5.20)
원현린 칼럼 /
사랑은 연기하지 말라
세상에는 조금 미루어도 되는 일이 있고 지금 당장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사랑이야 말로 내일로 미루면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5월 가정의 달도 하순에 접어들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대다수 가정에서는 모처럼의 가족 식사 모임도 갖는 등 가족 간에 화목한 한 때를 보냈을 것이다.스승의 날에도 그동안 가르쳐주고 깨우쳐 준 스승을 찾아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이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 간에 나누는 도타운 정들의 표현이다.
이처럼 정겨워야할 5월에 부끄러운 통계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아동학대가 줄지 않고 있다한다. 아동학대 사례 중에는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사례가 가장 많다 한다.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9천309건으로 아동학대행위자의 83.3%가 부모였고 87.2%가 가정이었다. 학교폭력도 줄지 않아 지난 3월15일부터 5월14일까지 두 달 동안 6천400여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청소년 폭력은 도를 넘어 학교에서 제자가 정신의 부모인 스승을 폭행하고 가정에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폭행을 가하는 패륜도 왕왕 일어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모두가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행동들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톨스토이가 여행 중이었다. 어느 날 날이 저물어 한 여관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잠을 자고 난 후 아침에 막 숙소를 나서려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묵었던 여관집에는 병든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어린아이는 여행객이 갖고 다니는 빨간색 가방을 갖고 싶어 했다. 어머니에게 여행객의 가방을 달라고 하며 울면서 보챘다.
톨스토이의 마음은 아팠다.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가방 안에는 짐이 잔뜩 들어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빨간 가방을 아이에게 주리라 마음먹곤 그대로 여관을 나왔다. 여행을 마친 톨스토이는 가방을 어린아이에게 주기 위해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그 여관을 찾았다. 때는 이미 늦었다. 그토록 빨간 가방을 기다리던 그 아이는 병세가 악화되어 이미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힌 후였다. 톨스토이는 아이의 무덤을 찾아 빨간 가방을 앞에 놓고 비석을 세워주었다. 그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 넣었다. ‘사랑은 연기하지 말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 사람마다 기막힌 인연들이 있어 만난다. 인연을 떠 올려본다. 내일이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다. 불교용어에 겁(劫)이라는 말이 있다. 이 겁에는 겨자겁과 반석겁의 얘기가 있다. 겨자겁은 사방 사십리에 달하는 큰 성(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백년에 한 알씩 꺼내어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지는 세월을 1겁이라 한다. 반석겁 또한 사방 사십리에 달하는 큰 바위가 있는데 백년에 한 번씩 날아오는 새가 깃털로 한 번 스치고 지나가곤하여 그 바위가 다 달아 없어지는 세월을 1겁이라 한다.
한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은 1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하고 하루의 동행은 2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 하룻밤을 한 집에서 자려면 3천겁, 한 민족으로 태어나려면 4천겁, 한 동네에 태어남은 5천겁, 하룻밤의 동침은 6천겁,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7천겁, 부모와 자식이 되려면 8천겁의 세월이, 형제로 태어나려면 9천겁, 스승과 제자의 연은 1만겁의 시간이 흘러야 맺어지는 것이 인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 무진장(無盡藏)의 세월, 즉 영겁(永劫)의 시간이 지나야 이루어지는 것이 만남의 인연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만남의 인연들이 그 만큼 소중한 관계들이라는 뜻 일게다. 그러니 만남을 귀히 여기라는 의미이다.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했다. 오월도 지나가고 있다.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설파한 인도주의자 톨스토이의 말대로 사랑이야말로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 간의 사랑이던 남녀 간의 사랑이던.
2010년 05월 20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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