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언제까지 지켜주지 못할 것인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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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3.11)
원현린 칼럼 /
언제까지 지켜주지 못할 것인가
지난 일요일 저녁, 방송 3사가 공동으로 밴쿠버의 영웅들을 환영하는 음악회를 갖고 국민 금메달을 수여하는 등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다시 한 번 지나간 영광의 순간 장면들을 본 시민들은 가슴 벅차했고 자랑스러워했다.
축하 방송이 끝나자마자 전해진 부산 어린 여학생 살해 소식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나하며 통탄했다. 사회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했나.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축제 분위기는 이내 곧 차디차게 가라앉았다. 필자와 함께 시청하던 친구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온 소리가 있었다. “이런데도 사형제도 폐지를 운운하느냐”는 것이었다.
흔히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한테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며 ‘짐승’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이 짐승을 죽인다고 큰 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짐승이 주인이 있는 동물이라면 재물 손괴죄 등으로 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짐승 같은 짓을 하는 인간은 짐승으로 간주할 수 있다. 흉악범을 처단하는 것은 바로 이 짐승을 처단하는 일이다. 사람을 해친 짐승에게 어찌 인격을 운운 할 수 있는가. 국민은 극도로 분개하고 있다. 국민감정이 법일 수도 있다. 어떻게 성폭행을 일삼고 다니는 짐승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수가 있는가. 치안당국에 묻고 싶다. 우리 사회의 치안은 유지되고 있는가. 아니면 부재상태인가.
지난해 12세 이하 아동 성폭행 사건은 총 1천17건이 일어났으며 13세 이상 20세 이하의 경우는 5천765건으로 모두 합할 경우 6천782건이 발생 한 것으로 경찰은 집계하고 있다. 이는 하루 평균 18.5건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 수치가 우리나라의 성범죄 실태다. 여기에 신고하지 않아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사건까지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는 잘 다듬어진 문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손의 안전을 확보’하기는 커녕 도처에서 위협하고 있다.
헌법은 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고 천명하고 있다. 대통령도 취임에 즈음하여 헌법에 명시된 대로 취임선서를 하도록 돼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돼 있다.
이 모든 규정이 허울 좋은 이름뿐이며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 모두는 최상위법인 헌법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켜야 할 법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번 사건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겠다.
이런 참극이 되풀이될 때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이다. 언제까지 지켜주지 못할 것인가. 어른 된 것이 부끄럽다.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 실상이 이런데도 국회는 여전히 정쟁을 일삼고 있어 성범죄 관련법의 조속입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언제나 사후약방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다. 이번 사건 이후 경찰과 검찰 등 치안 당국이 내 놓은 대책들을 보면 왜 진작부터 그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화가 난다. 경찰은 성범죄자는 걸어 다니는 흉기인 만큼 모든 성범죄자를 1대 1로 전담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했다. 검찰도 재범 우려가 높은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법’을 소급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등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일정 시일이 지나가면 으레 그래 왔듯이 또 다시 법정에서는 법관과 변호사들이 “초범인데다가 개전의 정이 보이고…”하면서 성폭행범의 형량을 낮추거나 방면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에겐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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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3-10 19: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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