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성숙한 우리가 힘을 모을 때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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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9. 7.25)
성숙한 우리가 힘을 모을 때다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우리는 지금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전쟁을 치르면서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은 평화 헌법을 바꿔 군대를 보유한 나라를 만들면서 동북아에서 자신의 몫을 키우려는 구조로 바꾸려 우리와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논리가 바로 "내가 하는 행동이 국제 규범"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정책을 자기 쪽에 유리하도록 바꾸거나 우리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사실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아베 총리, 트럼프 대통령 이 세 사람의 목표는 비슷한 점이 많고 다른 점도 몇 가지 있으나 같은 범주에서 봐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우선주의, 중국몽, 일본의 재도약은 우선 자신들의 장점을 앞세운 선제 충격요법으로 상대의 기를 꺾어놓고 보자는 식이다.
이를 합리화하려고 모두들 앞뒤 안 맞는 안보 논리를 동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의적으로 정의해 무역 전쟁의 도구를 삼는 것은 패권국의 횡포일 테고,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사드 배치 문제에서 보여준 행태가 비슷하다. 아베의 경우는 국내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 수단으로 활용하려 대북 제재 문제를 수출 규제 이유로 끌어들이는 망발을 태연히 저지르고 있다.
‘미·일과 중국’이라는 대결 구도 강화에서 중국을 주저앉히려는 미국은 일본이 충실한 하위 동맹국으로서 강해지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 구도가 약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기에 아베 총리의 망발이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보는 견해도 많지만 삼각동맹에 결정적 균열이 오지 않는 한에서 일본 편에 서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우리 한국은 그야말로 일대 난국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극복할 방도가 무엇일까?
혹자는 어차피 묘책은 없으며 이럴 때일수록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전쟁이라고 해서 과거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절세의 독립운동가들, 만세를 부르다 죽어간 민초들, 만주 땅에서 학살당한 동포들, 먼 이국 땅에서 피눈물을 뿌렸던 그들의 죽음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번 지당하다. 당장 나라 형편이 어려워지더라도 역사의 질곡에서 정의와 양심을 지키려 했던 울타리를 내칠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 한편에서는 경제를 희생양으로 삼으며 필시 ‘시장의 반란’을 초래하기에 일본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지렛대부터 찾아야 하고 불편한 양보라도 해서 이 난국을 극복해야지 기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진 뒤에 무슨 방안이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이 또한 백번 지당하다.
경제가 망가진 이후에 대안이란 의미가 없다. 우리의 국민 통합과 경제 응집력 수준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묘책이 나와야 한다. 기기묘묘한 계책이 아니라 병법에서 말하는 패하지 않는 방도다. 실제 이기려고 덤비는 게임을 하면 필패가 결론이다.
무력을 사용한 전쟁에서는 승자 독식이지만 경제 전쟁은 그렇지 않다. 많이 얻기보다는 덜 손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주권의 영토와 달리 경제 영토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제 전쟁사에서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기습적 수출 규제의 칼을 뽑기 전에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을 질책할 수 있겠으나 일본의 아베가 보여주는 그 망발을 받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도 아직은 국민의 이름을 불러서 안 되고, 여당도 과거사의 주먹만 치켜들고 민족 감정에 호소해서 안 된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의 그동안 행태는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도대체 그들은 어느 나라 정치인이고 언론인지 모를 판이니…….
20세기 말 동북아시아 경제는 놀랍도록 변했다. 1995년부터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졌을 때 중국은 성큼성큼 뛰어가 2009년 일본을 누르고 G2로 급부상했고 우리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현재 GDP 규모는 중·일·한 순으로 8:3:1 정도다. 인구 수로 대비하면 우리의 저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거사의 매듭을 푸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해국과 피해국의 상쟁과 공존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성숙하지 못한 우리 자신 아닐까.
2019년 07월 25일 목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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