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지금 우리의 정치적 관심이 정상인가(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19.10. 3)
지금 우리의 정치적 관심이 정상인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계율상 자찬훼타(自讚毁他), 즉 자신을 높이기 위해 남의 잘못을 거론하는 걸 못하게 돼 있는 스님 한 분이 "국회의 도적떼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과격한 말씀(?)을 서슴지 않아 모였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평소 그 스님의 언행은 참으로 겸손하고 부드러웠기에 모임이 끝난 후에도 계속 화제가 됐다.
과연 정치인 욕하기가 한국인의 취미생활인가? 아니 한국인은 최고의 오락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진보적 성향이 강한 쪽에서는 보수 정객들에게 온갖 험담을 퍼붓는 것이 거의 일상화된 지 오래고, 보수적 성향 쪽에서 "학생 시절 데모하느라 공부를 뒷전에 놓았던 놈들, 제 손으로 돈 한 번 벌어본 적 없는 놈들이 나라를 주물러대니 이 꼴이다"라는 험한 말을 내뱉는다.
이유야 각각 다를 터인데 정치인 혐오증만큼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이런 정도의 혐오발언과 비판을 들었다면 아마 머지않아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치인을 욕하며 당장에 어떤 행동에 나설 듯한 태도를 봐도 피식 웃고 말 것이다. 욕하고 손가락질한 그 정치인을 선거 때가 되면 표를 찍어 당선시켜주는 일을 빈번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제도 정치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냉소주의란 이웃 나라는 물론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 우리처럼 취미 삼아 내지는 최고의 오락(?)으로 하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 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험한 말을 하고 냉소를 퍼붓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평범한 국회의원이 사회를 주무르는 실력자의 대오에 속하거나 기득권자의 대리인, 아니면 유력 정당 보스의 충실한 하수인에 불과한 경우가 흔하며 그들의 정치 행위가 당리당략이나 지역의 이권 챙기는 데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달리 희망이 없지도 않다. 지금의 정치에 대해 "그게 아니다"라며 냉소를 퍼붓는 것이 모두를 위한 평등하고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남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간혹 질이 다른 정치인이 나타날 경우 그에게 물질적인 보상을 요구하기는커녕 자발적으로 헌신·열정적으로 지지하는 ‘빠’문화 현상은 바른 정치에 대한 열망이 우리 가슴속에 늘 살아 있다는 걸 가르쳐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현상 역시 정치를 고급 오락으로 여기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지 않은가. 땅덩이는 작고 변변한 자원이 없는 나라가 살 길은 근면과 경쟁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냥 생존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선진국이 되는 걸 국가의 종교쯤으로 여기는 사회 아닌가.
그래서 택한 것이 ‘삶의 전쟁화’였다. 마치 피 튀기는 전쟁을 하듯이 산다는 것이다. 이런 싸움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 조건 중에서 오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치인을 욕하면서 즐기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욕하면서 빠져드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날의 참석자 가운데 국회의원 지망생 한 사람은 "정치에 대한 그 많은 욕설과 폄훼가 바로 재미 만점의 국민 오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평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한심한 정치와 정치인을 보고 한탄하는 것이 일상이 돼 버린 건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다. 최고의 오락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으나 거기에는 남에서 빌붙지 않고는 정계나 관계에서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슬픈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매천야록」의 황현이 일찍이 지적한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것이 습관화돼 버려 그들의 사랑방에 출입하고 그들이 주도하는 모임에 나가는 것이 환로(宦路)의 필수적 절차가 됐다"는 그 사회적 병환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오락공화국에서 사람을 싫증나게 하는 건 죄악처럼 되고 만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오락을 즐기려고 발버둥치다가 너무나 많은 걸 잃고 있지는 않은지 곱씹어 봐야 한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는 명제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현상이다. 모두가 자숙할 때다.
2019.10.03
기호일보, KIHOILBO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