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우리의 일회성 축제가 더 나은 걸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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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9.10.18)
우리의 일회성 축제가 더 나은 걸까?
/나채훈<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전국적으로 축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인기 가수의 열창도, 현란한 춤사위도, 마음 곳곳의 특산물 전시도 내년(?)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탓에 행사를 취소해야 했던 곳에서는 다음 번에 두 배 이상 멋있게 하겠노라는 다짐도 있었다.
여기서 올해의 축제를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축제는 단순히 즐기고 노는 것일까? 일상을 잊고 다시(Re) 창조적인(Creative) 놀이(Recreation)를 즐기다가 원 위치해 새로운 기분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수효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일상이 다시 시작됐음은 분명하다.
사회적 함의도 있겠으나 정치적인 것도 꽤 많다는 점에서 잠시의 일탈은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디오니소스 제전이 귀족들의 공화정을 유지하기 위해 평민들에게 일시적 일탈감을 주었고, 히틀러가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축제 기간에 연주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세뇌시켰으며, 지금도 곳곳에서는 80년대 식 국풍(國風)을 모방한 축제가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으니 말이다.
어떤 집단주의에 합일되면서 보이지 않는 중심에 단단히 끈으로 묶이는 힘을 느낀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나마 즐기고 노는 가운데 그저 장삿속이나 인기 전술에 녹아버리는 평범한 서민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에게 축제의 핵심이 뭐냐고 묻는 일이 종종 있는데 답변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자괴하는 한 축제위원장과의 대화에서 얼핏 스쳐간 건 수년 전 일본에서의 경험이었다. 그때는 아마 초여름이었다.
도쿄의 아사쿠사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많은 이들이 흰 수건 머리띠를 동여매고 있었고, 동네나 자신들이 속한 그룹(조직)의 이름이 박힌 겉옷을 입고 버선살 모양의 신을 신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역에서 나오자 인력거들이 바쁘게 달려가고, 한 손으로 음식이 담긴 쟁반을 치켜들고 달려가는 배달원, 무리를 지어 센소지(淺草社)라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향하는 흥분된 표정이 역력한 사람들 모습이 어딘가 모를 열띤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산쟈 마쓰리(三社祭)’라고 하는 일종의 종교 행사이면서 축제가 열리는 그날의 기억은 꽤 세월이 흘렀음에도 또렷이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건 아마 그 다음에 벌어진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센소지 안에는 포장마차 비슷한 좌판대가 계속 이어져 시장을 이뤄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토끼나 펭귄, 로봇들을 팔고 있는데, 연예인 사진을 파는 사람,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 숯불에 센베이를 굽는 젊은이 등등 사찰의 축제라기보다 마치 먹자판 축제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왓쇼이! 왓쏘이" 하는 외침과 주위 사람들이 함께 복창하면서 사방이 북새통을 되었다.
‘모코시’라고 하는 수레를 앞세우고 거리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마치 우리 풍물에서 한바탕 소리를 내며 마을을 돌아 축제를 시작하듯이 그들도 그랬다. 다른 것은 뒤를 따르는 수천, 아니 몇 만 명은 족히 될 듯한 행렬이었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소리치면서 걸어갔다. 거의 종일 행진하다가 저녁 7시 무렵이 되어 신사로 돌아가는데 이 광경이 전국에 인터넷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돼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기를 불어 넣어준다고 했다.
"이 축제는 영혼과 힘이 있다"고 안내자가 설명해 주었다. 사실 주위에 있는 일본인들은 거의 하나가 된 듯이 외치고 열기를 내뿜었다. "즐기고 노는 것 같지만 이런 과정에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저 집단적인 힘은 지난날 우리를 짓밟고 만주로, 대륙으로, 태평양으로 뻗었던 그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행태나 다른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한일 관계는 별로 나쁘지 않았으나 혐한 보도나 관련 서적들은 꽤 잘 팔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축제를 지켜보면서 느껴지는 일회성 신바람, 소비성 놀이, 흔쾌히 동조하기 어려운 무질서의 현장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걸 어쩌랴. 축제는 그저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났다가 되돌아가는 일시적 놀이로 그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본의 축제와 겹쳐 떠오른다.
기호일보, KIHOILBO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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