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인천미술의 토양(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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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12. 2)
인천미술의 토양
/조우성의 미추홀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선생은 조선의 마지막 어용화사(御用畵師)였다. 어용화사란 당대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던 화가 중의 화가로 임금의 얼굴을 그리는 영예를 누렸다. 조선 말에는 이당 선생 혼자뿐이었다.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선생은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한국미의 본질을 천착해 갔던 학자였다. 내로라하는 국립중앙박물관장 중 여럿이 그의 애제자였다. 선생은 지금도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태두로 불리고 있다.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선생은 한중일 3국에서 추사(秋史) 이래의 명필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대가이다. 중풍에도 굴하지 않고 각고 끝에 왼손으로 더 나은 작품을 빚어내어 불굴의 예술혼을 보여준 사표(師表)였다.
석남 이경성(石南 李慶成) 선생은 우리나라 미술 평론의 개척자로서 여러 곳의 미술관장을 역임하면서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선생이 제정한 '석남미술상'은 젊은 미술인의 등용문으로 정평이 나 있다.
판화가 김상유(金相游) 선생은 미개척 분야였던 국내 판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독특한 작가였다. 선생이 제1회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일은 한국 판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전환점이 되었다.
이 분들은 우리나라 미술계를 이끌어 왔다는 공통점과 함께 모두 인천 출신이라는 지리적 유전 인자를 지니고 있다. 생전에 인천 미술문화의 토양이 국내 최고의 경지임을 증거하였고, 노탐(老貪)을 버리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도 같다. 그 예술을 기리고, 맥을 이어가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정보 : 20091202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12-01 오후 8: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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