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두 어린이의 경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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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12. 7)
오광철의 전망차 /
두 어린이의 경우
<그들, 아이들의 얼굴에 그리고 어른들 얼굴에 뚜렷이 떠오르고 세월이란 주름살 마다 깊숙이 파진 것은 굶주림 바로 그것이었다. 굶주림은 모든 곳에 만연되어 있었다. 천야만야한 높은 집 빨랫줄에 매달린 초라한 천 속에서 튀어나왔고 밀짚과 넝마와 나무와 종이가 뒤범벅이 된 그속에 숨겨져 있었고 아까부터 톱질하던 사나이의 조그마한 장작개비 한 조각에 스며 있었다. 굶주림은 연기없는 굴뚝에서 눈알을 부릅뜨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도시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18세기 루이16세 집권시기 귀족사회의 사치가 만연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굶주림의 이야기는 우리도 50년대 전쟁시기에 경험했다. 매일 아침마다 거지가 찾아와 귀찮고 안쓰럽게 했었다. 그 중에는 어린 거지도 있었다. 50~60년이 지난 지금도 한 어린아이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이었다. 여섯살이라고 했다. 홑저고리 바지를 입고 맨발로 검은 고무신을 끌고 대문 밖에서 밥달라며 떨었다. 제 얼굴보다 큰 바가지를 들고서 였다. 어느 가까운 곳에 머물던 전쟁 피난민 가족이 아이를 시켜 밥 얻어오라고 보낸듯 했다. 마침 밥상을 받던 식구들이 측은하게 여겨 밥 몇술을 담아 보냈다. 그 뒤로도 몇날 찾아 왔는데 그후로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다면 지금 60대 노인이 되어있겠지. 궁금하다.
그때는 모두가 주리던 시절이었다. 사실 이웃에도 며칠째 밥구경을 못하는 가정이 있었다. 가장은 집나가서 없고 아낙과 자녀들이 지쳐 쓰러져 있었다. 사람이 몇끼를 굶으면 몸에서 열이 난다던가. 어린 것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옷을 벗은 채 였었다.
지금도 더러 굶주리는 어린이가 있다고 한다. 소위 결식아동들이다. 학교급식 때문에 눈치꾸러기가 되어 점심은 그럭저럭 해결되었으나 방학기간에는 그것이 가능치가 않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방학이 서운하다. 본보 4일자에 실린 두 어린이의 경우도 그렇다. 기준이 강화되어 점심지원에서 제외될 처지라고 한다. 곳곳에 급식소가 있는데도 어린이들은 굶는다. 정책의 궁핍탓은 아닐까.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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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2-06 17: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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