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새 달력은 조금 더 있다 걸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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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12.17)
원현린 칼럼 /
새 달력은 조금 더 있다 걸자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말년에 정리한 그의 명상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사랑, 행복, 영혼, 신, 믿음, 삶, 죽음, 말, 행동, 진리, 거짓, 노동, 고통, 학문, 분노, 오만’ 등은 모두가 우리 인생의 손님들이라 했다.
그렇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보낼 수가 없는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우리의 손님들이다. 세상에는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이 있고 낮과 밤, 양과 음이 있다. 그 어느 한 쪽도 인생의 전체를 차지 할 수는 없다. 반쪽들이다.
인생에는 쾌락과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불행도 있다. 행복한 날이 있으면 불행한 날도 있다. 기쁨이 반이면 슬픔도 반이다. 전체를 놓고 볼 때 아무리 좋다 한들 그것은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나쁘다고, 원하지 않는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은 누구도 비켜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안다.
그래도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인생 80년을 친다면 40년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반은 수면을 취하는 것을 감안하면 살아 깨어 활동하는 시간은 고작 2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소중하고 숭엄한 인생인데 고통스럽고 불행한 시간이라 하여 인생의 반을 버릴 수는 없다. 만약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주어진 인생의 절반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해마다 우리는 한해를 보내놓고 연말이 되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곤 한다. 어제의 잘못을 바로잡아 보다 나은 내일의 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연말이다. 언론사마다 ‘2009년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있다. 분야별로 결산도 내 보낸다. 이렇듯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해를 결산하다보면 좋은 일도 있었고 궂은일도 있었을 게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했다.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장맛과 술맛은 오래된 것일수록 더욱 좋다했다. 낡고 지난 것이라 해서 모두 다 버릴 수는 없다. ‘해묵은 떡갈나무 잎에서 더욱 성스러움이 빛난다’는 말은 진리인 듯싶다.
말 그대로 올 한해는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다. 김연아가 세계피겨스케이팅의 여제(女帝)에 올라 기분 좋았다. 한국 여자 골퍼들의 연이은 낭보도 우리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예기치 못한 ‘신종인플루엔자’의 창궐로 인해 온 국민의 건강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특히 올해에는 두 전직 대통령들의 죽음도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치권은 올해에도 또 다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다.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여야(與野) 간 첨예한 정쟁으로 국회는 저조한 법률안 처리 실적을 보였다. 예산 심의도 늦어졌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민생현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온 국민이 주지하다시피 올해의 국회는 ‘최악의 국회’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필자는 모두(冒頭)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했다. 잘된 일이었건 잘못된 일이었건 간에 지나놓고 보면 모두가 인생에 있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들이다.
12월의 달력은 조금 더 있다 떼어 내자. 그리고 새 달력은 며칠 더 있다 걸자. 새 달력을 거는 데 그리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해마다 열 두 달 만에 어김없이 달력을 갈아치우곤 한다. 마치 묵은 달력이 걸려있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이는 지구의 공전주기가 365일 이기에 그럴게다. 벽에 새 달력을 거는 일은 금년 한해가 가기 전이라면 언제라도 좋다.
올 한해가 다 가려면 아직도 보름이 남았다. 한해를 뒤 돌아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래서 한 시인은 ‘12월의 시’에서 노래하고 있다.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거나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라고.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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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2-16 18: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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