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가짜 세상에 살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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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12. 2)
원현린 칼럼 /
가짜 세상에 살다
인천은 항만과 공항이 있어 많은 양의 화물이 오간다. 가짜 물건이 이 속에 묻혀 유입된다. 인천이 우리나라 가짜 물건의 유입 통로이다. 신문 지면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기사 중 하나가 세관을 통해 들여오다 적발되는 가짜, 짝퉁 물건에 관한 기사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 세관 당국에 적발된 금덩어리가 성분 분석결과 100% 가짜였다 한다. 국제 금값이 치솟고 있다. 이 틈을 타 시세차익을 노린 금 반입도 늘고 있다. 가격이 오르면 돈을 벌기 좋은 기회로 여기는 것이 장사꾼이다. 이들이 이점을 놓칠 리 없을 게다.
이번에 적발된 금괴는 탄자니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금이다. 금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순 가짜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짝퉁이고 가짜라 해도 지금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성분은 함유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전혀 성분이 없었다하니 혀를 찰 만도 하다.
문제는 순전히 가짜임에도 속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가짜 금이 시중에 나돈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전 필자의 한 친구가 한동안 지니고 있던 금붙이를 보석상에 가져가서 감정을 해 보았더니 가짜였다 한다. 그 친구도 속아서 가짜를 구입했던 것이다. 속고 산 사람은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또 남을 속이고 팔 것이다. 이렇게 악의 순환은 되풀이 된다.
유명 메이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 많다. 세관에 근무하는 한 친구는 세관을 통해 반입되는 등산복 등 유명상표의 상당수가 짝퉁이라 했다. 어쩌면 적발되는 양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가짜 물품이 한번 사회에 유통되고 나면 사후에 추적하여 적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짝퉁 물건의 유통은 건전한 경제구조를 망치기까지 한다. 세관의 초동 검색단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은 이 때문이다.
가짜하면 또 술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소주나 막걸리는 모르되 양주 중에 가짜가 많다. 가짜 양주가 경찰에 왕왕 적발되곤 한다.
사람 얼굴도 가짜다. 여성들 중 상당수가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꾸고 있다. 오늘도 성형얼굴에 가짜 금붙이를 붙이고 매달고, 짝퉁 메이커 옷을 걸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이다. 지난 일이지만 학력을 위조, 유명인사까지 됐다가 들통나는 바람에 그동안 쌓아온 명예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예도 있었다. 한때 학력위조는 교수, 정치인, 연예인 등 계층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관행처럼 되었었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 위장은 곧 벗겨지게 마련이다. 진짜를 감추고 가짜를 내세워 행세하는 사람들에게서 진실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옛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 그림자를 그리지 않았다. 허상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태어나 왜 가짜로 사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사이비 세상에 살고 있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게다.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우리에게 진위를 판별할 분별력이 잃어가고 있음을 걱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굳이 옹고집전과 쥐뿔 설화를 들추지 않더라도 가짜가 진짜를 몰아낸 일화는 많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의 시대다. 심지어 “온갖 불행이 닥쳐와도 믿고 바랄 것은 오직 헌 셔츠하나 걸친 자신뿐이다”라고까지 한 철학자는 말했다.
갈수록 순종과 진짜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연말이면 해마다 대학교수들이 선정하는 한해의 사자성어가 한 때는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의미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이었던 해가 있었다. 가히 가짜와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을 풍자한 정문일침(頂門一鍼)이라 하겠다.
연말이다. 또다시 올해의 사자성어가 나올 시기이다. 금년 한해의 모습을 담은 네 글자 문구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아닐
까 한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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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2-02 17: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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