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박승직 상점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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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11. 9)
조우성의미추홀 /
박승직 상점
화장품의 역사는 오래다. '고려도경'에 "고려인은 짙은 화장을 즐기지 않아 분은 사용하되, 연지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눈썹을 버드나무와 같이 가늘고 아름답게 그린다"고 기록돼 있다. 그 기초는 지금도 분(粉)이다.
우리나라에 신식 분이 등장한 것은 1922년이었다. '박가분(朴家粉)'이 그것인데, 말 그대로 '박가(朴家)'가 만든 '분(粉)'이다. 외제도 있었지만, 싸고 화장이 고르게 먹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는 일화가 전한다.
박가분으로 떼돈을 번 제조소의 정식 명칭은 '박승직 상점(朴承稷商店)'이다. 이 상점은 1882년부터 장사를 시작해, 1889년 종로 4가에서 포목상을 열었고 1894년경에는 이미 '배오개의 거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1925년부터 '박승직 상점'은 전화, 자동차, 금전등록기 등을 갖추고 직원 20~30명을 거느려 전국 대리점을 운영했다. 이 무렵 주식회사로 체제를 바꾼 뒤 상신상회, 공신상회, 두산상회 등 6개 사업체를 거느렸다.
창업주 박승직의 장남 박두병은 법인으로 남아 있던 '주식회사 박승직상점'을 1951년 두산상회주식회사로 개편하였고, 1952년 동양맥주주식회사를 불하 받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여 'OB그룹'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100년 기업(企業)', 최초의 3대 계승 기업이 탄생돼 굴지의 그룹으로써 사회에 기여했던 것인데, 최근 후세들의 경영 갈등이 급기야는 전 회장의 자살로까지 이어져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100년 노포(老鋪)'들이 수두룩한 선진국의 기업사가 새삼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정보 : 20091109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11-08 오후 9: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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