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가을도 깊었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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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10. 8)
오광철의 전망차 /
가을도 깊었다
인디언 청년이 뉴욕의 백인 친구를 방문했다. 둘이 시내를 걷게 되었는데 인디언 청년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귀뚜라미 소리가 난다고 했다. 백인 친구가 이렇게 거리가 복잡한데 무슨 귀뚜라미 소리냐며 핀잔했다. 인디언 청년은 친구에게 따라오라며 앞장서 모퉁이의 구석집에 이르자 친구에게 벽틈으로 귀기울여 보라고 했다. 과연 귀뚜라미가 노래하고 있었다.
백인 친구가 “자네는 시골에 살아서 청각이 뛰어나는군”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인디언이 동전 한닢을 땅에 떨어뜨리자 길가던 사람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때 인디언 청년이 말했다. “내 귀가 밝은게 아니라 당신들 귀가 어두워진 것이네. 귀뚜라미 소리는 못들어도 돈 소리는 듣지 않는가.” 무엇을 듣느냐고 하는것은 어떤것에 관심을 두느냐의 차이이다. 인디언은 자연의 심오함에 마음쓰고 있었던 것이다.
귀뚜라미는 가을 전령사이다. 햇바람이 나기 무섭게 뜨락 돌틈에서 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추석이 지난지도 닷새가 지났다. 공기 맑은 달밝은 밤이면 시끄러워야 할 귀뚜라미 소리가 도시 아파트에서는 들리지를 않는다. 도시 사람의 귀가 무디어서일까. 귀 기울이면 착각일까.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니 인디언 청년 처럼 들리는 방향으로 더듬고도 싶다.
“귀뜰귀뜰” 운다고해서 귀뚜라미가 되었지만 우는 소리가 반드시 귀뜰귀뜰 하지만은 않는다. 자세히 들어보면 “리-리-리-”하는것도 같고 어찌 들으면 “찌르 찌르”하는 듯도 하다. 하긴 그것이 귀뚜라미가 아니고 이름모를 풀벌레 울음소리인지도 모른다. 풀벌레가 우는 것은 숫놈이 암놈을 유혹하는 세레나데이다. 날개 부분에 발음기가 있어 그것을 발로 문질러서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그것은 울음도 아니다.
그런것을 옛사람들은 귀뚜라미 소리로 공연히 깊은 시름에 젖어 잠들 줄 몰랐다.
“밤새워 샐녘에 겨우 잠들었더니/벌레 소리만 요란하구나/비좁은 뜨락의 무한한 사연에/외로운 달빛이 차갑구나”-조선조 영조때의 석북 신광수의 “귀뚜라미” 한시 풀이이다. 그만큼 가을도 깊었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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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0-07 2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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