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가죽으로 만든 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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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8.24)
오광철의 전망차 /
가죽으로 만든 배
사람이 물과 더불어 살면서 배가 있었다. 배에 몸을 실어 식량을 구하고 건너편 섬에도 갈 수 있었다. 바다 건너에는 누가 살고 무엇이 있을까 관심도 생겼을 것이다. 처음에는 물에 뜨는 통나무 하나로 족했다. 차츰 통나무에 홈을 파서 몸을 싣더니 여기에다 노와 삿대를 착안했다. 여럿이 실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엮어 뗏목을 만들었다. 이것들이 최초의 배였다.
나무가 없고 그 대신 갈대가 무성한 곳에서는 그것을 베어다 엮어 짚배를 만들었다. 나무도 갈짚도 없는 북극권에서는 무엇으로 배를 만들었을까. 에스키모와 인디언은 짐승 뼈대로 엮고 가죽을 둘러쳐 만들었다. 혹 나무 껍질을 벗겨 대신하기도 했다. 이것이 카누요 카약이었다. 캐나다에서 에스키모가 시작한 카누는 호수와 강을 건너는 교통수단이었다. 그들은 카누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그 카누가 스포츠로 등장했다. 19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의 변호사 존 맥그리거는 카누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유럽 대륙에 도착해 카누의 스포츠화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카누는 영국인들 사이에 스포츠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특히 보이스카우트에게서 호응을 얻었다. 그후 독일로 전파된 카누는 그곳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1876년 쾰른 레가타 경기에서 비로소 경기의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24년 파리 올림픽때 세느강에서 첫 시범경기가 선을 보이더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카누와 카약이 정식 종목으로 등장했다.
기네스북에 수록된 카누로 가장 긴 항해를 한 기록은 다나와 도날드 스타겔 부자이다. 그들은 1980년 6월1일부터 1982년 5월1일까지 2년여 동안 캐나다에서 브라질 까지 1만9천603㎞를 노저어 갔다. 그리고 올림픽에서의 최다 우승은 스웨덴의 프레드렉슨으로 6개의 금메달과 각각 1개씩의 은·동메달을 획득했다.
인천스포츠교실이 도시축전 관람객을 위한 주말카누교실을 송도 유수지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최근 마린 도시 인천이 해상 스포츠의 요람으로 태어나고 있다. 조정팀을 창설한 기관이 있고 마침 인천체고팀은 전국 조정에서 무타페어 정상에 올랐다.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입력: 2009-08-23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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