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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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9. 3)
원현린 칼럼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당신은 여기서 살아날 수 있을 거야. 살아서 아이들도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보아야 해. 그렇게 오래오래 살다가 포근한 침대에 누워 하늘나라로 가야 해. 여기서 죽어선 안 돼!”
한때 인기리에 상영됐던 영화 ‘타이타닉’의 한 대목이다. 항해 도중 배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자 캄캄하고 차디찬 북대서양의 바다 한복판에서 사투를 벌이며 잭이 로즈에게 건넨 말이다. 인간이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살겠다는 신념만 있으면 살아나는 예를 우리는 보아오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도 사망원인 통계 결과’가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통계에 따르면 전 연령층에서 사망률이 감소하고 있으나 20~30대 남자의 경우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발표이다. 그것도 이 연령층에서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자살에 의한 사망자수는 총사망자수 24만6천 명 중 1만2천858명으로 1일 평균 35.1명꼴로 발생했으며 전년대비 684명(5.6%)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3대 사망원인이 암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이지만 20~30대의 경우는 자살이 1위인 것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큰 사회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한창 나이이다. 사회에 나가 일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 연령층이다. 우리 사회의 주역들이다. 이들 연령층에서 상당수가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젊디 젊은 청춘에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사회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자살예방을 위해 자살방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자살실태이다. 자살시민이 늘고 있는 우리사회는 어딘가 병든 사회이지 결코 건전한 사회는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하겠다. 젊은이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교육이 잘못됐음이다.
17세기 영국의 종교시인 존 던(John Donne)은 ‘죽음을 맞이해서의 기도’에서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분일 뿐이다. 만약에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은 그 만큼 작아지고 모래톱이 그리 되어도, 당신이나 당신 친구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이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으로도 나는 줄어드나니, 나는 인류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인 것.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노라.”고 했다.
헤밍웨이의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표제로 인용돼 더 널리 알려지고 있는 이 글은 인류전체의 연대성을 설파한 문장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글의 뜻에서 보듯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혼증가도 자살증가를 가져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혼인상태별 자살사망률을 보면 이혼자의 자살률이 유배우자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의 위기가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 또한 커다란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살다 보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번에 발표된 자살통계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고의적 자해에 의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자살의 경우 자살자 가족과 그 주변의 지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도 죽는다.”라는 연역추리가 있듯이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오죽하면 자살하겠느냐는 말도 있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자살만은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도록 주어진 삶을 살다가 편안한 침대에서 안락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자 바람일 것이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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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9-02 18: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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