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지용택(56회)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의 중국기행(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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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 8.12)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의 중국기행
빼곡한 초고층 빌딩 … 밤하늘을 수놓듯
역사를 통해 미래를 보는 여정(旅程) / 4 외탄(外灘), 빼앗긴 중화의 꿈
절대다수 영국 건물 '신고전주의' 양식따라 건설
1930년대엔 英·美건축 각축장 … '물질적 부' 의미
십리양장(十里洋場)이란 보통 조계지를 상징하는 말로 십리에 걸친 서양인의 호화스러운 거리를 뜻하지만 그 중에서도 외탄(外灘, 와이탄) 거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은 항구어귀로부터 황포강변에 있는 제방 위에 즐비한 서양식 건물들이 즐비한 곳으로 현재까지 고스란히 남아 당시 이곳을 차지했던 서양인들의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은 항구일 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 세력의 창구였다. 외탄의 스카이라인은 영국 건물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1852년에 건축한 최고의 고층빌딩인 영국 영사관이다. 팰리스호텔, 케세이호텔, 그리고 세관빌딩과 홍콩상하이은행의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은 영국 식민통지의 힘을 보여주었다.
▲건축물로 표상된 식민지열강의 자부심
외탄에 있는 절대다수의 영국 건물은 모두 19세기 말엽 영국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 양식에 따라 건설되었는데, 이것은 식민지 인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등지에도 이런 건물들이 즐비했다. 영국이 지배한 이곳에서 주로 현지 공공기관의 건축양식이 되었던 '신고전주의'는 의식적으로 로마제국과 그리스의 건축양식을 본받아 결합시킨 것이다. 이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세계 제국이라는 긍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으로 1920년대 세계질서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번영을 누렸던 영국의 전성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미국이라는 신흥강대국이 필리핀을 점령한 후 태평양 지역에서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미국도 영국조계와 합병하여 국제거주지를 만들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영국에 대적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30년대 상해의 공공조계는 이미 두 나라 건축의 각축장이었다. 사실상 1920년대 후반에는 이미 영국의 식민지 건축물보다 더 높은 30여 채의 고층건물이 미국의 현대적 건축자재와 기술의 산물로서 출현했다. 이것들은 주로 은행 건물, 호텔, 아파트와 백화점 등이었는데 가장 높은 24층의 파크호텔이었다. 이 건축물들은 단순히 제국주의 열강들의 힘을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산업자본주의 발전의 표상으로서 이들 마천루(摩天樓)는 상해의 경관에 침입한 가장 식민지적인 외래문물 중 하나였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상징, 마천루
상해 조계의 높이 솟은 마천루들은 구도심지역의 평범한 중국집(대체로 2,3층 정도의 높이)을 내려다 볼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적 건축 미학과도 큰 충돌을 빚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건축물들은 높이를 추구하지 않았고, 특히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택의 경우가 그랬다. 따라서 당시의 민심으로 생각해보면 마천루는 늘 상류층과 하류층, 부자와 빈자, 외세와 중국으로 표상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서민층에서는 이 높은 건물에 대해 "이 높은 건물은 황포강이 범람할 때 쓰려고 지은 것이지!"라거나 "상해가 높고 큰 외국 건물 때문에 50년 이내에 땅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것은 중국 사람들의 처지와는 관계없이 타자들의 부와 영광에 대한 저주가 숨어있는 풍자라 하겠다.
황포강 제방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노력과 땀으로 축조되었지만 그 위에 빌딩을 세우고, 치부하는 사람은 외국인들이라는 것을 중국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을까? 1930년대 영국인들은 "상해는 어느새 번화한 국제적 메트로폴리스로서 세계 5대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 최대의 항구이며 개항장인 이 도시는 일찍이 '동양의 파리'라는 국제적인 신화를 만들어 냈을 정도로 중국의 여타 지역과는 달리 현대적인 매력이 충만한 도시"라 선전했다. 그러나 한 편 상해의 실상은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668개의 사창굴이 번창하고, 온갖 폭력조직의 소굴이라는 악명도 함께 얻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식민침탈의 오욕을 딛고 일어서는 상해
1989년 처음으로 가보았던 상해국제공항은 그 명성에 비해 대단히 촌스러운 구식건물이었다. 자전거가 공항 안을 굴러다녔고, 마차로 짐을 나르기도 했다. 증축공사가 한창이었던 때라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후 상해는 급속도로 변모해 해를 넘겨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되어갔다. 과연 지금의 상해는 어떤 모습일까.
외탄에서 황포강을 넘어가면 세계적인 금융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푸동지구가 나온다. 초고층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듯 빼곡하게 들어선 푸동지구는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장려하는 시의 방침에 따라 기발하고 개성 넘치는 건물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가고 있는 푸동지구의 스카이라인은 지금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상해 세계금융센터는 총 101층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를 자랑한다. 깔끔하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곳에는 79층에서 93층까지 하이야트 호텔이 입주해 있고, 100층에는 전망대가 있다고 자랑한다.
조계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외탄의 풍경과 황포강 넘어 솟아오른 초고층 빌딩은 첨단과 전통, 동양과 서양 그리고 침략한 자와 침략당한 자가 공존하는 상해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상해는 이미 중국을 넘어 세계의 도시가 된 것이다. 흡사한 역사를 가진 인천의 시민으로서 그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종이신문정보 : 20090812일자 1판 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08-11 오후 9: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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