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유완식 선생(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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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 8.21)
유완식 선생
조우성의 미추홀/
일본의 여름은 고시엥(甲子園)대회로 들뜬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주최사이든 상대지이든 간에 아사히신문 주최 고시엥대회를 열렬하게 보도한다. 이번 대회에 선수단을 보낸 49개 지역에서의 열기 또한 대단하다.
올해로 제91회를 맞는 이 대회가 처음 열린 것은 1915년. 일본의 '교토 2중'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조선 지역' 팀이 출전한 것은 제7회 때인 1921년이었는데 전조선중등야구대회를 제패한 부산상고가 마운드에 섰다.
고교야구의 명문 인천상업(현 仁川高)은 22회(1936년), 24회(1938년), 25회(1939) 대회에 연속 출전해 구도 인천의 저력을 과시했었는데 그때 조선인 선수로 출전해 크게 활약한 인물이 김선웅, 장영식 두 분이었다.
인천 야구계를 이끈 또 한 분이 지난 19일 별세한 유완식 선생이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상고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탁월한 기량을 인정받아 프로 팀 '한큐(阪急) 브레이브스'에서 포수로 뛰었다.
광복 후 귀국해 중구 배다리에서 '인천기공사'란 업체를 경영하는 한편 포지션을 투수로 바꿔 활약했다. 육척 장신에 힘이 좋아 당시 인기 높았던 '전국도시대항전대회'에서 인천팀이 누차 우승하는 데 주 역을 맡았다.
"볼(Ball)은 정직하다.", "볼을 탓하지 마라.", "투수의 성패는 연습하기에 달렸다." 고인의 이 말씀들은 그대로 후배들에게 감명 깊은 좌우명이 되었다고 한다(김재은 선생 회고). 그러나 그것이 어찌 야구의 철학에 그쳤겠는가 싶다. 어지러운 세상에 부음을 접하며 그 인간과 철학을 재삼 되새겨보는 오늘이다.
/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정보 : 20090821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08-20 오후 9: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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