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면(赦免), 그것은 은사(恩赦)가 아니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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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7.30)
원현린 칼럼 /
사면(赦免), 그것은 은사(恩赦)가 아니다
우리 헌법 제79조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 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이어 ‘사면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돼 있다. 여기에서 ‘사면’은 형사소송법이라든가 그 밖의 법률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 범죄자에 대한 형벌권의 일부나 전부를 포기하거나 형벌에서 발생하는 법률상의 효과를 면제하는 작용이다. 때문에 이것은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는 8·15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한다. 이번에 생계형 민생사범에 대한 대사면이 내려질 것이라 한다. 우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사면이 생계형 범죄자를 위주로 하여 사면을 단행한다니 그 폭에 관심이 크다.
경제가 어렵다. 이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트럭 한 대로 생업에 종사하다가 어쩌다 법을 어겨 면허가 취소되어 생계가 막막한 시민처럼 딱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빠뜨려서는 안 되겠다.
사면은 과거 군주시대에 군주가 베푸는 자비로 여겨 은사(恩赦)라 칭하여지기도 했다. 사면의 역사는 오래됐다. 중세에 종교단체나 수도원이 매년 일정수의 수형자를 방면할 권한을 가졌다. 인간이 신의 몫으로 돌려 신이 실정법을 초월하여 인간에게 내리는 은총으로 인식하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예전에도 사형수에 대한 사형 집행 시, 우연의 사건에 의해 사형수가 목매는 밧줄이 끊어지거나, 망나니가 사형수의 목을 베기 위해 휘두르는 칼이 부러지는 경우 등에는 그 죄수를 석방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또한 신의 뜻으로 돌리고 아무리 중죄인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그 죄인의 생명을 거두려하지 않았다. 이것도 일종의 사면이다.
유대의 풍속 중에는 유대인이 이집트 지배에서 벗어난 날이 우리의 광복절에 해당하는 과월절에 죄수 가운데 한 사람을 사면하여 석방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사면이 법의 영역에 들어와 치자(治者)가 베푸는 은전(恩典)으로 변칙 운용된 적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민주주의 하에서 3권 분립 정신에 반한다 하여 제도의 도입을 꺼리기도 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경사가 있어 나라에서 사면을 단행해도 그리 마음이 기쁘거나 즐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는 시민들의 기억에 여전히 감옥에 있어야 할 인사들이 예외 없이 사면을 받아 풀려나오곤 했다. 시민들의 우려처럼 풀려난 이들은 하나같이 또 다시 선거에 출마하거나 중용되어 국정을 운운하곤 했다.
누구는 형기를 채우고 누구는 중도에 사면으로 빠져 나오곤 한다. 특수층치고 형기를 다 마치고 석방되는 인사는 없었다. 부정부패를 일삼다 감옥에 간 정·재계 인사들은 제외되어야 한다. 이렇듯 지금까지 사면은 특정 인사를 풀어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냐는 오해도 받아왔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대화합이라느니 국민대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사면을 단행, 큰 죄를 짓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정치계 인사나 재계 인사를 풀어준다면 여전히 우리는 사면제도를 잘못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달리 이해할 국민은 없을 게다.
이른바 돈 많고 지적수준이 높은 범죄인을 일컫는 범털에 대한 특전(特典)은 없어야 한다. 그러잖아도 특권층의 특별잔치인 특별사면은 없애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국민감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그들에게 더 높은 도덕성과 법적의무가 요구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 통치자의 은총, 은혜의 의미를 지니던 과거 왕조시대의 사면과는 다르다. 사면, 그것은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남용되어선 안 된다. 법치국가이다. 오직 법에 의한 사면만이 있어야 한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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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7-29 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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