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숨겨진 가치의 재발견과 문화마케팅(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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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9. 5.16)
숨겨진 가치의 재발견과 문화마케팅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재발견의 시대라고 해야 할까? 잊혔거나 잊히고 있는 걸 되찾는 건 도시재생이나 역사유적의 브랜드화나 헌책방의 가치를 찾는 새로운 경험 등등에서 나타나 곳곳에서 신선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 2000년대 들어 전주 서부권 신시가지가 조성되고 도시외곽 우회도로가 개통되면서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전주역 일대가 ‘첫 마중길’ 사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삭막한 8차선 도로에 숲을 조성하고, 도로변에 노천카페가 들어서 이국적 풍치를 더해주고, 야간 조명을 설치해 밤 풍광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거리를 만든 것이다.
물론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다. "사람·환경·곡선이 잘 반영된 명품 도로를 통해 명품 도시 전주의 이미지를 높인다"는 목적이 성공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고 이방인이나 여행객들에게 탄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행자 중심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의미를 둔 것이다.
1981년 전라선 이설로 전주역이 현 위치에 이전 조성되고 한때 전주 동부권 중심 상업지로 불야성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가 쇠락을 거듭하자 옛 번성기를 되찾기 위해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 베이징의 초고령 유적 자금성(紫禁城 : 고궁박물원)이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춘제(春節 : 중국의 설)에 이곳을 찾는 것이 유행이 됐고 방문 인증샷이 있어야 행세(?)하는 사람으로 꼽힐 정도다.
여기에 고궁 기념품 등 문화상품 판매가 고공 행진 중으로 올해 약 20억 위안(우리 돈 3천800억 원 정도)이 될 것이라는 보도다. 교과서 속에 나오는 궁궐이 아니라 일상 속의 역사 문화공간으로 시민들과 교감한다는 의도가 적중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데 무엇보다 다채로운 행사로 문턱을 낮추고, 지난날 대보름 전후에는 개원 후 처음으로 야간에 문을 열고 고궁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 속에서도 과감히 조명소를 선보인 것은 대중화의 성공이자 고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칭찬받고 있다.
자금성 안은 이미 옛 궁궐에 머무르지 않는다. 당초 개방 구역이 30% 정도였는데 현재 80%로 확대했고, 화장실 개선, 식당·카페 등 편의시설도 대폭 확충했다. 입장료 수입의 2배 이상 문화상품 수입이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
박물관·전시관·옛 궁궐이라고 하면 입장료 수입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를 뛰어넘은 건 단순히 상업화가 아니라 역사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굴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인민일보 인터넷판도 "고궁 마케팅이 운영과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인근에 한동안 버려져 있던 물류창고가 ‘공공헌책방’으로 변신해 인기 있는 문화공간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3월 문을 연 이곳 ‘서울책보고’는 오래전부터 헌책방으로 잘 알려진 청계천 일대와 전국책방협동조합 소속의 헌책방들이 참여해 각각 보유했던 책을 전시·판매하도록 한 것이다.
내부 배치도 일반 책방의 책 분류에 따른 서가 배치와 달리 책방별로 독자적인 서가를 마련해 각기 다른 25개의 헌책방이 집합·공존하는 형태를 갖췄다. 여기서 헌책만 파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와 북 콘서트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해 관심을 고조시키고,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독립 출판물 공간, 명사들이 기증한 1만여 권의 도서관, 책방 한쪽에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게 책 읽기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있어 이용객의 편의를 배려한다.
더하여 매달 마지막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시민들이 자신의 책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한 평 시민의 책시장’도 열린다. 절판된 책을 찾으려면 헌책방이 제격이다. 또 오래된 책에 남겨진 사용자의 흔적도 책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법. 헌책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이곳은 동굴 같은 통로를 따라 13만 권이 꽂혀 있는 서가로 일대 장관이다.
쇠락해가는 도시에 문화를 입혀 재생에 성공하는 것이나 입장료 수입만 따지던 박물관에 브랜드화를 시도하는 일, 헌책방을 한곳으로 모으는 건 누구나 쉽게 떠올리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이겠으나 ‘가치의 재발견’, ‘문화의 마케팅’이 결합하는 성취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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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16일 목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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