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시행착오 겪을 시간이 없다(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09. 7. 2)
원현린 칼럼 / 주필
시행착오 겪을 시간이 없다
지난 주말 필자는 지인들과 서울 종로구 팔판동과 삼청동엘 다녀왔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똑같은 길을 조선 후기 시인 하원 정수동이 지나고 있었다. 하원이 고관대작들이 사는 팔판동(八判洞;청와대 아래 동네로 경복궁 북동쪽 삼청동 아래에 위치한 고을. 8명의 판서가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을 지나는데 웬 아낙네가 어린아이 등을 두드리며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하원이 가던 길을 멈추고 까닭을 물으니 아이가 동전을 삼켜 아이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원이 “얼마짜리 동전이며 누구 동전이요?”하고 물으니 “한 푼짜리 구리동전인데 이 아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하원이 자신 있는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아무 걱정 없습니다. 아, 저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높은 벼슬아치들은 나랏돈 몇백 만냥 씩을 꿀꺽꿀꺽 삼켜도 아무 탈이 없는데 고작 한 푼짜리 제돈 제가 삼켰는데 무슨 탈 있겠소.”
곧 고위직 인사가 단행된다고 한다. 총리를 포함한 개각도 뒤따를 듯하다. 정승과 판서 자리가 바뀌는 것이다. 팔판동에 살 사람이 바뀐다. 이미 인사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어떠한 학자도 조정의 부름을 받고 출사(出仕)를 마다한 이는 없었다. 능력이 없다느니, 그만한 그릇이 못된다느니 하고 극구 사양한 인사를 보지 못했다. 국가에서 부르니 어쩔 수 없이 나아간다 한다. 하나같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다.
인사청문회에 나가면 나신(裸身)이 되어야 함에도 끝까지 부정축재과정 등을 부인하다가 끝내는 망신만 당하고 낙마하는 예를 누차 보아오고 있는 국민들이다.
각자 자리는 따로 있는 법이다. 자기 자리가 아닌 자리에 앉으면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자기 자신이다. 능력이 있고 없고는 인사위원들보다 스스로 가장 잘 알 게다. 청문회 결과 부적격자로 판정이 나면 또 다시 새로운 인물을 물색해야 하는 등 국가행정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크다.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 격이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국민들은 이 점이 걱정된다. 청문회 단계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당하느니 스스로 물어보아 그릇이 안 되면 애당초 사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괜히 시간만 허비하지 말고.
부귀영화를 마다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허유소부(許由巢父)’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사이지만 한 번 더 소개하면 이렇다. 그 옛날 중국의 허유라는 사람이 기산 기슭 영수라는 강가에서 흐르는 물에 귀를 씻고 있었다. 때 마침 소부라는 그의 친구가 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왔다가 친구의 이상스런 행동을 보고 “왜 그렇게 귀를 씻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허유는 “귀가 더럽혀져서 그러네”하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어제 요임금이 찾아와 나라를 다스려 달라 하고 돌아가더니 오늘은 신하가 또 다시 찾아와 9주를 다스려 달라 했네. 정치를 하라는 말을 들었으니 내 귀가 더럽혀졌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귀를 씻고 있네”라고 까닭을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소부는 “그러길래 내가 뭐라고 했나. 남 앞에서 섣불리 아는 척하면 욕을 본다고 하지 않았나. 오염된 물을 내 소에게 먹일 수는 없지”하고는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갔다.
벼슬자리가 좋든 싫든 능력 있는 누군가가 나가야 한다. 출사를 해서 이 난국을 바로잡아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때는 비상시국이다.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우리다. 우리에겐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이 없다.
인사권자는 적임자를 적재적소에 임명해야 한다.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검찰총장도 못하겠다 하고 판사 노릇도 하기 어렵다 하는 작금의 풍토도 문제다.
또 다시 신분 높은 자리 인사가 곧 이루어진다. 국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일단 따랐으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쳐 일하면 된다. 높은 자리일수록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입력: 2009-07-01 19:09:55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