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 칼럼/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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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이천일보(09. 5.25)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자
/이원규 칼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최후는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그 분이 남긴 14행의 유서는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하고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절절히 느끼게 해 준다.
유서의 짧은 문장들은 사실을 기록하거나 전하는 구실보다는 인간적인 심경을 함축한 측면이 더 강하다. 누구를 원망하는 구절도 없고, 모두 협동해서 잘 살라고 국민에게 당부하는 유지(遺志)도 없다. 인간적인 풍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언어들일 뿐이다. 우리는 짧은 글들에 함유된 그분의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심경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그 분의 자결은 박정희 대통령 때처럼 국민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가진 않았지만 충격과 슬픔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고향집 뒷산 바위 벼랑으로 투신한 것과 유서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재임 기간에 그 분을 극도로 부정했던 사람들은 소식을 접한 직후,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도대체 말이 되냐고, 자신을 욕되게 하고 국가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당혹감에 빠졌었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 특별한 부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는 듯하다. 14행의 유서가 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전임 대통령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는데 남은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첫째는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애도하며 그분을 보내야 한다. 외경스런 마음으로 삼갈 일은 삼가야 한다. 재임 기간에 그 분을 지지했건 반대했건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요 국가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둘째는 우리 모두 부끄러워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 마치 순환하는 질서처럼 파멸의 벼랑으로 떨어져 버리는 우리 정치 현실이 그렇다. 그 분의 재임 기간의 허물은 곧 이 나라의 현실이고 퇴임한 대통령을 마치 당연한 순서인 듯이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버린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견디지 못해 자결한 사실은 이미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가 되었고 선명하게 우리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엄숙하게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는 대통령을 하든 국회의원을 하든 공직에 나서는 사람은 유리처럼 투명한 청렴을 신봉해야 한다. 그리고 후임 세력은 허물 있는 전임자를 다스리는 일에 보다 지혜롭게 나서야 한다.
셋째는 화해와 상생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는 그런 말이 없었지만 그분의 혼령이 바라는 바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돌이켜 보자. 지나간 왕조시대는 물론이고 광복 후 나라를 다시 세운 이후 막장까지 가는 반목과 증오 어린 싸움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가를, 그리고 지금도 파쟁과 반목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국력을 소모하고 있는가를.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에는 선생이 일본군을 탈출해 수십 번 생사의 고비를 넘어 수천 리를 걸어서 임시정부를 찾아간 뒤 지도자들의 파쟁에 실망한 나머지 그곳을 떠나며 폭탄 선언을 한 대목이 나온다. 지금 이곳을 떠나 일본군으로 재입대해 항공병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파쟁을 일삼는 임정 청사를 폭격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화해와 상생을 간곡히 부탁했다.
자칫 이번 사건이 더 큰 반목과 투쟁으로 확대된다면 더 큰 비극일 뿐이다. 고인도 그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광복 60년에 우리 정치는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을 떨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용서와 화해가 필요 하다. 증오심과 원망감에 사로잡힌, 고인의 지지자들의 이해와 포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분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켜 그분이 정치의 민주적 발전을 위하여 기여한 바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면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종이신문정보 : 20090525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05-24 오후 8: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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