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독일의 달'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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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 5.11)
'독일의 달'
/조우성의 미추홀
독일(獨逸)을 조선 말에는 덕국(德國)이라 했다. 뜻과는 상관없이 '도이치란드'를 한자음으로 가차(假借)한 것이다. 그것을 일본이 네덜란드식 발음으로 또 가차해 쓴 것이 '독일'인데 그걸 우리가 아직 습용하고 있다.
독일이 조선과 첫 대면을 한 것은 1870년 유태계 상인 오페르트가 저지른 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1883년 북경 주재 공사 브란트가 인천에 와서 조약 약정서에 서명한 후에는 사정이 급변하였다.
이듬해 10월 서울에서 조독통상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독일은 초대 서울 주재 총영사에 젬부쉬를, 부영사에 부들러를 각각 임명하였고, 그 해 11월부터는 부영사 부들러를 인천에 파견해 영사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렇게 출발한 한독외교사는 '특별한 관계'로 발전했다.
특히 묄렌도르프의 활약상은 눈부신 것이었는데 그는 1883년 인천해관을 창설하였고, 1884년 전환국 책임자가 되어 신식 화폐 제도를 도입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후원 하에 번성한 인천 세창양행의 활동상도 빼놓을 수 없다. '세창'은 당대 최대의 서양 무역상사로 그 사택은 국내 최초의 양관이었고, 독립신문에 낸 광고 역시 최초의 것이었으니 그 영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인천시지회가 독일연방공화국 대사관과 공동으로 오늘부터 한 달 간 '독일의 달' 행사를 구 제물포구락부에서 연다고 한다.
한 세기 전에 맺은 '특별한 관계'가 이를 계기로 다시금 꽃피웠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광복 후 처음 갖는 독일과의 문화 교류라는 점에서도 이번 행사를 주목하게 된다.
/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정보 : 20090511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05-10 오후 8: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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