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106년만이라는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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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인천신문(09. 5.14)
오광철의 전망차 /
106년만이라는데
이름을 남기지 않은 어느 미국 선교사가 물려준 낡은 앨범에 러일전쟁 흔적이 몇커트 담겨 있다. ‘제물포 항구의 쓸쓸한 러시아함대’라고 쓰여 있는데, 일본의 공격을 받고 반쯤 침몰한 사진이다. 1904년 이 때의 전쟁 서막을 ‘대한제국멸망사’에서 허버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날은 구름 한점 없었으나 안개가 짙게 끼었다. 일본 함대는 항구 입구로부터 적어도 8마일 밖에 있는 데다가 항구로 들어오는 해로를 양분하고 있는 ‘둥근섬’에 일부가 가리어 있었기 때문에 닻을 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글 중의 ‘둥근섬’이란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를 가리키며 그 때 그곳은 러일전쟁의 시발 현장이었다.
허버트의 ‘8마일 밖’이요 ‘둥근섬’이란 기록은 대체로 정확한 표현이다. 팔미도는 인천에서 13㎞ 거리의 작은 섬이요 4각형에 자루 달린 형국이라고 하니 말이다. 자유공원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누운 대소무의도 끝에 떨어져 육안으로도 분명하게 보인다. 밤에는 일정한 간격의 불빛으로 반짝거린다.
팔미도란 이름은 등대가 있는 주봉과 인천항 쪽 섬이 모래톱으로 연결된 여덟팔(八)자 모양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八未(팔미), ‘대동여지도’에는 八山(팔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八자를 닮아 생긴 이름임이 분명하다고 ‘인천광역시사’(2002년간)에 적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덟’에다 꼬리미(尾)라 적은 것은 ‘미’가 ‘산’을 의미하는 우리말의 ‘뫼’가 와음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팔미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1903년 구한말 유인등대로 세워져 이날까지 비오나 바람 불거나 의연히 불을 밝혀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외항선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지난 2003년 불을 밝힌 지 한세기를 맞으면서는 기존 것은 문화재로 물러앉고 그 곁에 새등대가 대신하고 있다.
최근 그곳에 뱃길이 열리면서 시민의 발길이 잦다. 이를 두고 ‘106년만의 개방’이라고 하는데 어디에 기준한 표기인지 궁금하다. 예전엔 여름이면 시민들이 찾았고 1960년대만 해도 해마다 촬영대회가 열렸었다.
인천신문
입력: 2009-05-13 19: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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