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장대 끝에 굽은 낚시 어찌 모르는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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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4.23)
원현린 칼럼
장대 끝에 굽은 낚시 어찌 모르는가!
“나 같이 못난 사람이 난리가 나고 국정의 질서가 무너진 가운데 국가의 중책을 맡아 위태로운 판국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잡지 못했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이럼에도 아직 시골구석에 살아남아서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 가고 있으니 이 어찌 나라의 너그러운 은혜가 아니겠는가!”
지나간 잘못을 반성하여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대비하여야 한다며 조선조 명신 서애 유성룡이 남긴 ‘징비록’의 서문 내용이다.
나라의 은혜로 생각하기는커녕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만 채우다가 종국에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곤 하는 오늘날 고관대작들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들릴지 모른다.
서애는 “아아! 임진년의 전쟁은 실로 참혹했다. 두 달이 채 못 되는 동안에 서울, 개성, 평양이 함락되고 팔도가 거의 모두 적에게 넘어갔으며 국왕이 난을 피해 서울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이러고 나서도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를 보존하라는 하늘의 뜻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뇌물 수수혐의로 숱한 공직자들이 사법처리를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손 댈 돈이 따로 있지 어떤 돈인데 국고를 축내는가. 나라 살림하라고 직책을 주고 국고의 열쇠를 주었다. 헌데 지위를 이용, 나랏돈을 횡령하는 공직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다. 벼슬아치들이 국민의 세금인 국고로 앞 다투어 사복을 채우니 외환위기가 오고 경기가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물으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후순위로 밀린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예전에는 대통령이 단연 우위였다. 하지만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수사를 받는 것이 정례화되다시피 했으니 그도 그럴 만하다 하겠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겠는가.
오천년 역사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리는 지금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외국인에게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국정을 농단하던 인사들이 사법처리 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우리나라다. 이를 싫어도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오늘을 사는 시민이다. 변호사인 필자의 한 친구는 “5년마다 재방송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서애의 말대로 이러고도 나라가 존속하는 것이 희한하다 하겠다.
대식증에 걸린 고위층 인사가 너무 많다. 뇌물을 먹었다 하면 수억이다. 어쩌면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공직자 부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부정수령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법이 무른 탓이다. 법이 무르니까 공무원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번 참여정부 인사들의 비리에서 보듯이 모든 돈거래에는 대가성이 있는 것이다. 앞서간 자들이 모두가 타죽었는데도 끊임없이 불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 같은 미욱한 인생들이 딱할 뿐이다.
고려 승려 나옹은 그의 시 ‘탄세(歎世)’에서 “낚싯줄 밑에 맛난 미끼만 탐할 줄 알고, 장대 끝에 굽은 낚시 있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라고 세태를 한탄했다. 그는 또 ‘경세’(警世)에서도 “공명과 재물은 화를 부르는 무서운 불길, 예부터 그 불에 타 죽은 자 그 몇이던가!”라고 읊고 있다. 가히 명리(名利)에 눈이 먼 세상 사람들에게 가한 정문일침(頂門一鍼)이라 할 만하다.
나라가 어렵다. 우리 공직자들의 이마에 솟아나는 땀방울이 아쉽다. 검찰청 조사실에서 취조를 당하며 흘리는 진땀이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며 흘리는 땀방울이 진정한 땀이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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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4-22 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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