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 진정성이 있을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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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9. 5.23)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 진정성이 있을까?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벌써 17년이나 지난 일이었소. 그때 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수행하여 평양에 갔었소. 이 무렵 미국의 대통령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였는데 그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자 ‘선제공격으로 정권을 교체시켜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고, 백악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어떻게든 북한을 궁지로 몰기 위해 온갖 꾀를 쓰고 있었소.
이런 판국이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께서는 최대한 쿨하게 평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소. 당일치기로 갔고, 우리 일행은 그 흔한 오찬 대신에 챙겨간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웠소. 사상 첫 일·북 정상회담이 참으로 볼썽사납게 진행된 건 거기서 끝나지 않았소.
우리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3명 중 8명이 이미 죽었다고 하는 말에 국내 여론이 일거에 들끓었으니 식민지배 등 과거 청산과 국교 정상화 등의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더구나 우리의 맹방인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추진한 일이었으니 후유증도 적지 않았었소. 그 당시를 떠올리면 실소가 절로 나는 건 어쩔 수 없소. 아니 식은땀이 난다고 해야 옳을 것 같소. 암튼 17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때의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소. 그래서 최근 나는 일·북 정상회담을 여는 데 남달리 준비를 갖추고 있다오.
우선 미국과의 사전 협의를 충분히 하는 것이오. 내가 하노이의 미·북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즉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내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겠다"라고 했소. 물론 조건 없이 만나는 것이오. 예전처럼 일본인 납치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접었소.
조건을 접었다고 납치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오. 진심을 밝힌다면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지요. 내 임기 중 실현하고 싶은 최대의 과제가 납치 문제 해결과 일·북 국교정상화 아니겠소.
일부에서는 내가 조건 없이 평양에 갈 용의가 있다 하자 진정성에 의문을 표하며 곧 있을 총선용 퍼포먼스라거나 재팬 패싱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쇼라고 보는 이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소.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알리바이용이라는 지적도 들었소.
하지만 그런 건 상관 없소. 만일에 내가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 앉아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만 주어져도 나는 아주 만족할 것이오. 존경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고, 한국 정부의 중재 역량도 바닥난 터에 우리 일본이 그 역할을 했다는 자랑스러운 성과도 있을 테니 말이오. 이건 내 진심이오. 믿어 주시오.
나는 1964년 이후 두 번째로 치르는 도쿄 하계올림픽에서 주변국가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오. 동북아 평화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그 누가 원하지 않겠소.
일·한 관계도 함께 생각해 보시오. 17년 전 고이즈미 총리께서 평양 방문을 결심한 데는 당시 남한 대통령이던 김대중 선생의 설득이 있었소. 지금은 어떻소? 일·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원활하지 못하오. 아마 전후 최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요.
양국 국민들 간에 교류는 대단히 활발한 데 비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소. 김정은 위원장은 1984년 생이오. 오늘의 여러 문제에 조금도 책임이 없소. 오히려 선대의 불행한 일들을 매듭짓는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지 않겠소.
이런 점들이 나를 적극적으로 일·북 정상회담에 나서게 만드는 점도 있단 말이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한 결단을 기대하고 있소. 자 이만하면 내 진정한 뜻이 어떤 것이지 알만 하지 않소? 이 정도로 끝냅시다. 요새 일이 너무 많소. 시간이 나면 내 연락드리겠소(이상 가상 인터뷰 끝).
과거 고이즈미 총리는 미디어를 이용한 ‘극장형 정치’ 수법이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정치적 제자인 아베 총리도 그에 못지 않다는 평을 듣는다.
아베는 새 연호 ‘레이와(令和 )’ 발표부터 지난 5월 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 4일 국민 참하(參賀: 궁에 들어가 축하함)까지 눈길을 끌어 모으는 이벤트를 줄줄이 연출하며 내년 도쿄올림픽까지 ‘간바로(힘내자)’ 분위기에 북·일 정상회담까지 정치쇼에 일로매진 중이다. 장수 정권의 비결이다. 이걸 믿어보자는 투의 일본 역할? 별로라는 생각이다.
2019년 05월 23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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