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 /도시락 검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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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3.26)
원현린 칼럼
도시락 검찰
검찰은 민생침해사범을 엄단하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진정 민생침해사범은 좀도둑들이 아니라 입으로는 청렴을 외치면서 손으로는 거액의 뇌물을 챙기는 대도(大盜)들이라 해야 옳다. 국부(國富)가 검은 금고로 들어가 사장되니 경제가 살아날 리 만무하다. 이들이야말로 국가경제를 망치는 장본인들이다.
지금 큰 도둑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모두가 혐의를 부인한다. 소환되는 혐의자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때로는 미소까지 띄운다. 이들은 국립호텔(국가에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하여 교도소를 속되게 부르는 말)에 투숙하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는 것 같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면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는 곳이 있으니까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 받는다 해도 낯빛이 흐려지지 않고 당당하기까지 할 수 있을 게다. 실제로 세인의 관심에서 잊혀지면 가석방이다 사면이다 하여 석방되곤 한다. 소위 범털(돈 많고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로 불리는 인사가 이들이다.
‘박연차 리스트’로 정국이 떠들썩하다. 국법을 우습게 아는 무리들은 전·현직 일부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관, 장차관급 등 고위 공무원에서 하급 말직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길이가 한도 끝도 없다. 이래가지고서는 더 이상 선진국에로의 길은 요원하다 하겠다. 이처럼 썩은 토양 위에서는 결코 나라가 부강해질 수 없다.
검찰수사가 그동안 용두사미만 보여 준 것이 사실이다. 권력형 비리 사건일수록 어디에서 자르는지 수사도 흐지부지해 왔다. 국민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수사가 아니었다.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착수했다가 여론이 가라앉으면 슬그머니 덮어 버리는 사건이 한둘이 아니었음도 사실이다.
과연 검찰이 어느 정도까지 칼끝을 겨눌 수 있을지 그다지 믿기지는 않는다. 진정 살아있는 검찰이라면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만이 그동안 불신해온 검찰을 국민들이 믿게 하는 길이다. 우리나라가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법치주의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시락 검찰’로 알려진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유죄율 99%를 자랑한다.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정의의 대명사로도 불린다. 상부의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성역없는 수사로 유명하다. 검찰이 이 정도는 돼야 제대로 수사를 하고 산천초목도 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날선 칼날을 보여주는 것이 무서운 검찰이 아니다. 도시락을 먹는 검찰상만으로도 피의자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아무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검찰도 이제 어느 정도는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다만 스스로 더 높은 권력에 기속당하기 때문에 사용하라고 준 칼날을 무디게 할 뿐이다.
이번 사건을 놓고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를 인용,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고 할 것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검찰의 매서운 사정의 칼날을 보여주겠다는 강한 수사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늘 말로만 성역없는 수사를 외친다. 검찰은 이번 한 기업인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금품수수 여부까지도 “성역없이 조사하겠다”고 했다.
“국민은 권력과 강자의 외압에 힘없이 굴복하는 검찰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죽은 고목에서 꽃이 필 수 없듯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검찰이 인권과 정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검찰총장을 지낸 한 검찰 총수의 퇴임사 중 일부이다.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어느 사건보다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검찰은 알아야 한다. 권력형 비리는 연줄연줄 얽히고설켜 캐면 캘수록 나온다. 뿌리가 어디까지인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도시락 검찰만이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게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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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3-25 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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