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방명 서화첩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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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 3. 9)
방명 서화첩
조우성의 미추홀
시인 김억(金億)은 문단의 선두 주자였다.
1921년 문단 사상 최초로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펴냈고, 1923년에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인 '해파리의 노래'를 펴내 우리 현대문학의 여명기를 장식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오산중 교사 시절, 동향 제자 김소월을 발굴해 문단에 등단시켰으며 선구적 에스페란토 연구가로서 최초의 한글 입문서를 남기는 등 크게 활약했으나 40년 이후 친일과 납북에 얽힌 형극의 길을 걸었다.
그가 동서양을 넘나들며 간행한 번역 시집에는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보들레르 등이 있는데 1934년에는 출판 사상 가장 적은 수의 호화 한정판(총 25부) 번역 한시집 '망우초(忘憂草)'를 펴낸 재사이기도 했다.
그 옛날 사대부들이 파적거리의 하나로 음풍농월하며 서화(書畵)를 한데 묶어 남긴 첩(帖)은 이따금 보이나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 화가, 조각가, 만화가 등이 마음먹고 시집 제작에 동참한 것은 보기드문 예다.
화가 이상범, 노수현, 이마동, 이종우와 조각가 김복진과 삽화가 안석주, 만화가 최영수 등의 그림과 소설가 이광수, 이태준, 시인 주요한, 김기진, 박팔양, 수필가 이하윤의 친필 등 15점이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최근 인천에서도 대부분 그 아랫세대인 소설가 김동리, 시인 박목월, 서정주, 조병화, 서예가 유희강, 작곡가 채동선 등의 친필을 대할 수 있는 고(故) 우문국 화백의 결혼식 방명(芳名) 서화첩이 공개돼 화제다.
단편적이긴 하나 그 같은 유의 문화사적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수집, 보존하는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 : 20090309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9-03-08 오후 8: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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