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가족과 함께라면
작성자 : 김연욱
작성일 : 2009.02.01 03:51
조회수 : 1,253
본문
1997년 IMF한파가 몰아치던 그해
나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만 가면 문화생활도 원 없이 즐기고
배낭여행도 갈 수 있을 거라는 내 꿈은
경기 불황과 함께 산산 조각 났지요.
집안 형편은 나날이 어려워졌고
차비가 없어
학교를 못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심각하게 휴학을 고민할 정도로
우울한 상황이었죠.
결국 아빠의 사업이 쫄딱 망해
20여 년을 살아 온 동네를 등지고
낯선 동네로 이사했습니다.
전세도 월세도 아닌 아빠가 아시는 분의
건물 청소와 관리를 해 주는 대신
살게 된 건물의 옥탑방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지요.
우리는 각자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가족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만든 자책감에
매일 같이 술을 드셨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무척이나 괴로워하셨습니다.
동생과 나는 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가는 날이 잦아졌고요.
하루하루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사장님이던 아빠가
대걸래를 들고 건물 청소를 하시는 모습.
집 앞에 있는 순댓국 집에서
혼자 소주를 드시더 모습을
마음 아프게 지켜볼 수 밖에 없던
그 시절의 나는 늘 쓸쓸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작은 행복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가족 모두 건강함헤 감사했고
친구들과 멀어진 대신
가족에게 더욱 의지하게 됐지요.
부모님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때이기도 하고요.
태풍이 불던 여름 날
"지붕 날아가면 어쩌지?"라는 농담으로
불안을 숨기고 나누어 먹던 수박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힘든 시기를 이겨 냈지요.
3년 뒤 아빠의 일이 잘 풀려 우리 가족은
작지만 깨끗한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고
동생과 나도 각자의 일을 찾았습니다.
꿈꾸던 대학생의 모습은
졸업 후 사회에서 이루었죠.
몇 년이 지나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아빠는 끊었던 술을 한 잔 걸치고는
각 방을 다니며 뿌듯해하셨습니다.
어느 새 나는
서른 한 살의 노처녀가 되었지만
참 행복합니다.
어둡고 힘든 순간들이 바탕이 되어
우리 가족은 더 큰 행복과 사랑을
나누게 됐으니까요.
거친 바람도 조용히 이겨 낼 수 있는
지혜와 강인함도 생겼고요.
IMF 때보다 요즘 더 힘들다지만
이런 때일수록 가족의 손을 잡아 주세요.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나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만 가면 문화생활도 원 없이 즐기고
배낭여행도 갈 수 있을 거라는 내 꿈은
경기 불황과 함께 산산 조각 났지요.
집안 형편은 나날이 어려워졌고
차비가 없어
학교를 못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심각하게 휴학을 고민할 정도로
우울한 상황이었죠.
결국 아빠의 사업이 쫄딱 망해
20여 년을 살아 온 동네를 등지고
낯선 동네로 이사했습니다.
전세도 월세도 아닌 아빠가 아시는 분의
건물 청소와 관리를 해 주는 대신
살게 된 건물의 옥탑방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지요.
우리는 각자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가족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만든 자책감에
매일 같이 술을 드셨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무척이나 괴로워하셨습니다.
동생과 나는 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가는 날이 잦아졌고요.
하루하루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사장님이던 아빠가
대걸래를 들고 건물 청소를 하시는 모습.
집 앞에 있는 순댓국 집에서
혼자 소주를 드시더 모습을
마음 아프게 지켜볼 수 밖에 없던
그 시절의 나는 늘 쓸쓸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작은 행복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가족 모두 건강함헤 감사했고
친구들과 멀어진 대신
가족에게 더욱 의지하게 됐지요.
부모님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때이기도 하고요.
태풍이 불던 여름 날
"지붕 날아가면 어쩌지?"라는 농담으로
불안을 숨기고 나누어 먹던 수박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힘든 시기를 이겨 냈지요.
3년 뒤 아빠의 일이 잘 풀려 우리 가족은
작지만 깨끗한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고
동생과 나도 각자의 일을 찾았습니다.
꿈꾸던 대학생의 모습은
졸업 후 사회에서 이루었죠.
몇 년이 지나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아빠는 끊었던 술을 한 잔 걸치고는
각 방을 다니며 뿌듯해하셨습니다.
어느 새 나는
서른 한 살의 노처녀가 되었지만
참 행복합니다.
어둡고 힘든 순간들이 바탕이 되어
우리 가족은 더 큰 행복과 사랑을
나누게 됐으니까요.
거친 바람도 조용히 이겨 낼 수 있는
지혜와 강인함도 생겼고요.
IMF 때보다 요즘 더 힘들다지만
이런 때일수록 가족의 손을 잡아 주세요.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댓글목록 0
성명진님의 댓글
그런아빠라면..........가난은 참을수있는것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