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 문화칼럼/인천시립극단과 '맥베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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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8. 12. 8)
인천시립극단과 '맥베스'
이원규 문화칼럼
며칠 전 몹시 추운 저녁에 인천시립극단의 '맥베스' 공연을 보러 갔다. 예닐곱 번 본 작품인데 또 보고 싶었다. 연극이란 늘 새롭게 만들어지고, '맥베스'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 그리고 내면의 양심과 갈등으로 파멸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희곡을 미리 읽었다. 대학 초년생 시절 교정(校正)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산 김재남 교수 번역 1964년판 셰익스피어 전집이었다.
공연장으로 가면서 몇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연극의 위기에 관한 것이었다. 필자가 몸담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연극은 한없이 위축되어 왔다. 최근에는 한파처럼 들이닥친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인천시립극단이 어느 정도의 창조적 생명력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 하나는 관립극단의 양면성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들은 관이 만들어준 따뜻한 온돌방에서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상업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맥베스' 같은 대작을 공연하며 수준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타성에 빠져 참신한 창조력을 잃기 쉽다. 전국의 관립예술단들이 사정이 비슷해서 여기저기서 타성을 지적하며 작품별 오디션과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필자는 알고 있었다.
인천시립극단은 네 계절마다 한국 작품, 야외공연, 세계명작, 편안한 가족극을 무대에 올려 왔는데 '맥베스'는 늦어진 가을 공연이다. 단원들 신분이 무기한 계약직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 내부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맥베스'를 보면 모두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대작은 최고 수준의 예술성이 유기적으로 응집되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종훈 예술감독에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 뮤지컬 감독으로 성가가 높고 고전극을 새롭게 해석해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감독이 단원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훌륭하게 재창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또 한 가지 생각은 소설쟁이로서 갖는 관심이었다. 문학 작품인 희곡이 연출가와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재창조를 거쳐 어떻게 향수자에게 전달되느냐 하는 것. 소설에서는 모두 작가 몫이고 똑같은 텍스트로 향수자에게 다가간다. 그러므로 연극의 다양성은 소설가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극장의 좌석은 500여 석. 평일인데도 관객은 예상보다 많은 200 명쯤이었다. 곧 막이 열렸고 관객들은 110분 동안 연극에 몰입했다. 보통 관객의 입장에서 감상 소감을 말한다면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이종훈 감독의 연출은 대부분이 젊은 층인 관객들에게 알맞게 시각적 청각적 효과가 좋고 속도가 빠르면서도 이해하기 쉬웠다. 김정옥 교수의 번역 대본이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치 극시(劇詩)와도 같은 원작의 장려한 대사들은 매끄럽게 균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청중에게 무거운 주제를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느끼게 하는 오묘함이 있었다.
맥베스 역을 한 차광영의 연기는 인물의 내면을 충실히 표현하면서 연극을 무리 없이 이끌고 갔다. 레이디 맥베스 역의 송정화는 극중 인물과 동일시를 이룬 연기를 해보였다. 뱅코우 장군 역을 맡은 서국현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어서 오랜 시간 관중에게 기억될 것 같다.
집으로 가는데 셰익스피어의 또다른 비극 '햄릿'에서 햄릿이 배우에게 하는 말이 생각났다.
"연극의 목적이란 예나 제나 인간 본성을 거울에 비추어 선은 선하게 악은 악하게 드러내며 시대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네."
추운 겨울 저녁에 본 인천시립극단의 '맥베스' 공연이 그랬다. 17세기의 셰익스피어가 21세기의 우리를 위해 작품을 써 남긴 듯한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인천시립극단에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시민의 고급 예술 향수 욕망은 점점 커지고 안목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부탁드린다. 경제위기로 실의에 빠진 시민들에게 좋은 연극은 큰 위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종이신문 : 20081209일자 1판 10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12-08 오후 6: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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