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정의와 적폐가 뒤엉킨 사회는…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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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9. 1.17)
정의와 적폐가 뒤엉킨 사회는…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 10만 부 남짓 팔렸을 뿐인데 한국에서는 130만 부가 넘게 팔렸다.
한국이 정의로운 사회여서였을까?
1.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선수 상습 성폭행 사건은 대답의 하나일 수 있다. 담당 변호사는 "고소를 하고, 소송까지 가도 판결문은 의미가 없다. 선수는 대들어봤자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때도 연맹에서는 선수를 전혀 보호하지 않는다.
대한체육회도 방관하기는 마찬가지다. 구조의 문제라기보다 개인 문제만 남는다"고 하면서 평생 딸을 뒷바라지 해온 심석희의 아버지는 "굉장히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현재 약물을 복용하면서 버티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어째서 이런 악마가 오랫동안 설치고 피해자는 방치됐는지, 적폐가 이뤄졌는지 정의의 시각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2. 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정의당은 외유성 해외연수를 아예 없애고 소속 의원들이 해외연수 참여를 금지시키겠다고 했다. 정의당의 지적처럼 ‘연수’의 탈을 쓴 ‘향락관광’이 지방의회 도처에서 적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몇 년 전 충북도의원의 ‘수해 중 해외연수’를 비롯해 그동안 손가락질 받는 지방의회 해외연수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최근 경북 예천군의회 박모 의원이 연수 명목의 국외여행에서 현지 가이드를 폭행한 것도 그렇고 일부 의원은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했다.
예천군 재정 자립도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6위다. 거의 꼴찌다. 그런데 경북 23개 기초의회 가운데 지난해 해외연수비는 1인당 540만 원으로 단연 1등을 했다.
도대체 기초의회가 뭐기에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과연 적폐는 무엇인지 샌델에게 해답을 구하고 싶다.
3. 현행 선거제도가 거대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승자 독식제도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거대 정당은 과도한 사표로 민의를 왜곡하고 과두 지배하는 오늘의 이 정치 구도를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적폐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적폐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소신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민 여론 때문에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국민 여론이 뭐기에? 우리 의원들의 특권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그런 의원 수를 왜 늘리느냐는 것인데 이걸 교묘하게 비틀어 핑계 댄다. 검소하고 특권의식이 없는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국민 3만 명당 국회의원 1인(한국은 17만 명당 1명꼴)이 많다는 사람은 없다.
기득권 거대 정당이 계속 민의를 왜곡해서라도 권력의 달콤한 맛을 즐기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나만의 시각일까.
샌델은 그의 저서 제목에서 정의를 ‘해야 할 올바른 일’로 부연하고 있다. 정의를 풀이한 가장 쉽고 명료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정의를 추구하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찾는 사회적 도구가 법이다.
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면 정의와 공정은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 내부에 그 어느 때보다 갈등과 대립이 심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극단적으로 사회 붕괴 조짐일지 모른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 배경에는 정의의 혼선과 목적으로 수식된 공정이 마치 똬리를 튼 독사처럼 자리잡고 있다.
무조건 우기거나 아니라고 잡아떼면 되는 떼법 지상주의도 마찬가지고 국가대표 코치라는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다가 급기야는 어린 제자를 성폭행하고 뻔뻔스럽게 훈련 과정에 빚어진 사소한 일이라고 둘러대고, 예천군 의원은 처음에 폭행이 아니라 손을 들어 제기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했었다.
가수 김추자의 오래 전 히트곡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하는 구절이 있었다. 정의가 사라져가는 사회는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혹자는 「정의가 무엇인가?」의 베스트셀러 현상에 대해 ‘좁은 땅에 살면서 유행을 타는 사회적 특성에도 이유가 있겠으나 정의에 대한 환호와 목마름도 또 하나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는 진단에 동의할지 모른다.
정의에 대한 갈구가 크다면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는 1인칭적 사고(思考)와 행동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의는 적폐 위에 숨어 책장에만 꽂혀 있는 것인가?
2019년 01월 17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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