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 문화칼럼/ AG 주경기장과 인천정신(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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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주경기장과 인천정신
이원규 문화칼럼
며칠 전 인천의 후배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2014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이야기가 나왔다. 바로 전날 국무총리가 그냥 문학경기장을 개축해서 쓰는 게 좋겠다고 국회에서 답변한 말 때문이었다. 인천이 중앙정부에서 늘 홀대 받았으며 새 정부 각료 인선에서도 배려되지 않는다는 불만 섞인 이야기도 나왔다. 인천이 시민의 응집력이 약한 도시이기 때문에 가볍게 본다고 자탄 섞인 말을 하는 후배도 있었다.
누군가가 인천 정신의 근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른바 인천의 정체성을 말해보자는 것이었다. 조상 대대로 4백 년을 인천에서 살아온 필자에게도 고향 땅에 대한 정체성 정리는 중요한 일이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담론이었지만 인천의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비류(沸流)의 미추홀국 건국과 좌절 외에 인천이 한국 고대사와 중세사의 중심에 들어간 적은 없다. 주목할 것이 있다면 4세기 경 백제 사신이 동진(東晉)과 통교하기 위해 능허대(凌虛臺) 포구를 떠난 이후 대 중국 교섭의 문호로 이용되었다는 것, 고려 때 영종도에 경원정(慶源亭)이라는 객관을 뒀다는 것, 고려조와 조선조에 6명의 왕비를 배출한 왕가의 외향(外鄕)이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근세 후기에 들어 인천은 문호 개방을 요구하는 열강과의 교섭으로 인해 갑자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후 이 나라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식민지 수탈의 발판 기능을 했고, 초기 유민들을 떠나보냈고, 민족 분단과 상잔의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인천 원주민은 10%도 안되고 타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런 요인들이 인천을 굴종과 타협에 순응하고 응집력이 약한 모래 알갱이 같은 도시라는 인식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부정적 편견일 뿐이다. 인천은 민족의 수난기에 늘 앞장서 질풍노도를 맨몸으로 받아 안으면서도 늘 깨어 있던 도시였고, 그 어느 곳보다도 역동적으로 외세에 저항한 도시였으며, 고난 속에서도 외지인을 넉넉히 포용해온 도시였다.
지난했던 민족사의 한 세기를 더듬어보면 1907년 강화도 진위대의 투쟁, 3·1 만세운동 때 인천의 저항, 1929년 광주학생 의거 때는 인천상업중학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 4·19 혁명과 1986년의 5·3 항쟁 등 인천이 역동과 저항의 땅이었음을 알게 하는 증거가 허다하다.
응집력이 약하다는 인상은 인천이 안았던 숙명과 독특한 인구의 형성 과정에 원인이 있다. 인천은 가장 빠른 인구 증가를 보인 지역이다. 이주자들은 지주·자본가보다는 맨몸으로 부딪쳐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원주민들이나 겨우 뿌리를 내린 고참 이주자들은 신참 이주자들과 부대끼며 분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텃세가 없어졌다.
인천은 침체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로 살아왔으며 거대한 입을 벌리고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수용해 버리는 그릇과도 같았다. 그래서 인천을 포용의 도시라고 말해야 옳은 것이다.
수도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항만, 최고의 시설을 가진 인천공항, 그리고 송도와 청라 특구, 인천처럼 전망이 좋은 대도시는 한국에 없다. 인천은 영욕에 찬 역사를 꿋꿋이 감내하면서 축적한 체험과 거기서 획득한 동력을 갖고 있는 도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도시다.
곧 인구 3백만이 될 터인데 문학경기장보다 큰 주경기장이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주경기장보다는 선수촌 부지 때문에 중앙정부와 협조가 잘 안 된다는 말도 들리고, 인천이 마지막 카드를 빼들어 청라와 검단 신도시의 개발 이익으로 그것을 짓겠다고 토지개발공사에 요청했다는 '인천일보' 보도도 있었다.
경제 상황이 안좋긴 하지만 대규모 공사는 오히려 그것을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다. 시장과 조직위원회가 슬기롭게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결정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시민들의 단합된 목소리이다. 인천의 역동적 시민정신을 응집시킬 때인 것이다.
/소설가
종이신문 : 20081111일자 1판 10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11-10 오후 6: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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