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 문화칼럼/시와 소설의 매혹(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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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8. 9.16)
시와 소설의 매혹
문화칼럼 /소설가 이원규
옛날에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경인전철이나 광역버스를 타고보면 소설책 읽는 사람은 거의 없고 DMB 수신기를 들고 앉아 TV를 보는 사람이 많다.
근년에 문학독자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최고 전통을 가진 순수문예지는 20년전 7만부를 발행했는데 3천부로 줄어들었고, 서적유통업체들은 문예지들의 매장 진열을 거절하고 있다. 문자언어를 통한 전달이라는 전통적 양식이 디지털화로 이행되면서 문학자체의 존재기반이 뒤흔들리고 유통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소설을 탈고하면 어서 출간하자고 출판사에서 매달렸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 20~30년전 메이저급 문예지의 단편소설 원고료는 교사월급과 비슷했는데 그동안 답보하여 푼돈상태가 돼 버렸고 시와 소설을 써서는 먹고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절망할 것은 아니다. 문학은 푸르고 싱싱한 나무처럼 살아 있고 영원히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케이블 TV, DMB 수신기 등 보다 편하고 쉬운 수단이 독자들을 사로잡아 책을 등지게 하지만 그런 IT문화에는 아름다운 언어로 정제되고 함축된 시의 정신, 인생의 의미를 새로 발견하려는 소설의 정신이 밑바탕 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원고료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도 시인작가들이 열심히 밤잠을 안자며 글을 쓴다는 것이다. 밑지건 말건 100여종의 문예지가 발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에서도 문인들이 열심히 글을 쓴다. 인천문화재단이 파악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인천에서는 개인창작집 발간 55권, 문예지 발간 36회, 문학행사 45회가 이뤄졌다. 발간하고 펼친 전체 행위가 136회 남짓이라면 인구 270만 명의 인천광역시 시세를 생각할진대 대체로 왕성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시인작가 지망생도 많다. 지난겨울 문예지 '창작과 비평'의 신인소설 공모에는 당선작 1편만을 뽑는데 무려 922편이 응모되었고 중앙지들의 신춘문예 응모작은 거의 1천편씩에 육박했다. 시집과 소설책은 안 팔리는데 문인들이 열심히 쓰고 문인 지망생이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창작이라는 원시 이래의 근원적 본능이 주원인이겠지만 다른 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혹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예로 들어보면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적 존재이면서 끊임없이 신처럼 무한해지고 싶다. 시공(時空)의 한계에서 자유롭고 인간을 창조하고 싶어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흔들어 놓기는 했지만 시간은 인간의 생애를 타고 균질적으로 흐르고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생애에서 그 질서를 거스를 수 없다. 공간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고 타인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 소설에서 전능해져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마음대로 뛰어넘을 수 있다. 현실축과 회상축을 넘나들고 어느 부분에서는 느리게 어느 부분에서는 빠르게 하는 기법이 거기 있다. 공간도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 설정하고 마음대로 뛰어넘는다. 그리고 인간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
작가이건 작가지망생이건 소설을 쓰면서 끊임없이 반문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그리고 대개 사르트르와 비슷하게 스스로 대답한다. 그것이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고 자신의 숙명이라고. 그것이 또한 소설의 마력이다.
지금은 시와 소설을 배울 곳이 많다. 인천에서도 10년전에 새얼문화재단이 개설한 문예교실이 웬만한 대학보다 많은 시인작가를 배출했고, 그밖에 구청, 문화원, 공립도서관 등이 시인작가를 초빙해 글쓰기 강좌를 열고 있다. 거기 나가서 배운다고 모두 다 시인작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가을에 시,소설쓰기에 빠져 봤으면 좋겠다. 삶의 의미가 더 깊어지고 윤택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신문 : 20080916일자 1판 10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09-15 오후 6: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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