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진먼다오(金門島)에서 배울 바(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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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8.11.26)
진먼다오(金門島)에서 배울 바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얼마 전 중국과 미국의 다방면에 걸친 첨예한 대립을 상징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의 최신형 구축함과 순양함 두 척이 보란 듯이 타이완의 요충지 진먼다오(金門島) 앞바다를 위협 시위하듯이 통과했다는 보도였다. 진먼다오, 그곳은 중국 쪽에서 볼 때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고, 오늘날에는 인기 있는 관광명소로서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는 특이한 상징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섬은 한국전쟁 이후 중국군이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최대의 포격을 가했던 이른바 ‘진먼 포격’이 벌어진 곳이다. 중국 본토와는 2㎞ 남짓이지만 타이완과는 200㎞가 넘는 지리적 위치에 있어 중국(당시는 마오쩌둥이 다스렸다)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영토로 여겼으나 타이완에 속해 있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 도발을 감행했던 것이다.
1958년 8월 27일부터 10월까지 100일도 안 되는 동안에 중국군이 퍼부은 포탄은 무려 47만 발. 그야말로 소나기 쏟아지듯 포탄이 퍼부어졌다. 이 포격에도 중국은 진먼다오를 점령하지 못했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섬은 새로운 변신에 성공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들, 진먼다오의 주민들은 포격전 당시 피신용으로 만들었던 땅굴과 군사시설, 어두운 전쟁사의 잔해들을 적극 재활용해 새로운 번영의 기틀을 세웠다.
우선 그들은 엄청나게 쏟아진 포탄의 잔해들을 유용하게 변화시켰다. 당시의 포탄은 단단한 경금속, 이를 식칼로 만들어 ‘포탄 나이프’로 생산했다. 이것이 지금 관광객들에게는 최고의 인기 상품이 됐다. 그리고 수없이 파내려간 땅굴 ‘금성민방갱도’는 이색 체험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찾고 싶은 명소가 됐다. 어두운 과거를 흥미진진한 미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결과였다.
물론 주민들의 노력만이 이런 결실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1990년 이후 타이완 정부가 내린 본토와의 대립 정책 중단, 그러니까 92공식(1992년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되 각자 독자적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 이후 적극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인 적극성이 뒷받침됐다. 평화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아시아 최대의 면세점을 만들었고, ‘금문고량주’라는 명품 술까지 내놓았다. 심지어는 군화를 본뜬 신발을 관광특산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인천시 면적 5분의 1도 안 되는 곳에 인구 12만 명, 이곳에 매년 30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몰려든다. 중국 본토에서만 10만 명이 넘는다. 관광의 메카로서 손색이 없다. 앞으로의 기대치는 대단히 높다. 본토의 관광도시 샤먼에서 배편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만큼 연계한 관광코스로 단연 손꼽히고 있다.
더구나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에 가려면 통행증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진먼다오의 경우는 신분증과 사진 한 장만 있으면 여행사에서 손쉽게 방문증을 받을 수 있는 편리함도 있다. 편하게 갈 수 있고, 면세점도 잘 돼 있고, 주민들이 역사의 의미를 살려 ‘마오쩌둥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포탄 나이프에 이색적 땅굴까지 안보관광지로서 진먼다오의 미래는 밝다.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랑곳없이 양안(兩岸:중국 본토와 타이완의 호칭)의 화해무드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에서 최근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군사적 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비무장과 참관 인원들의 자유 왕래가 곧 실현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얼마 전까지 긴장의 화약고로 불린 백령·연평도 등 서해5도에 새 기운이 일고 있다. 평화안보관광지로서의 기대치다.
진먼다오로 돌아가 보자. 그곳에는 어두운 과거를 밝은 미래로 바꾼 주민들의 열정과 아이디어, 그리고 한마디로 ‘주민이 사는 곳’으로 만든 의지가 있다. 전망대나 세우고 망향의 정서를 자극하는 그런 발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관광상품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는 관료들과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분들이 모여 탁상공론식 관광, 체험적 관광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도시재생을 운운한다. 배운 바는 분명한데 겉핥기에 그치고 있다는 의구심이 어쩔 수 없이 밀려온다. 주민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게 지원하는 것이 상책일 듯하다.
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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