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한동식(83회)[데스크칼럼]/김장과 국민연금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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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8.12.17)
김장과 국민연금
/한동식 편집국 부국장
▲ 한동식 편집국 부국장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김장을 지난 주말에야 겨우 했다. 집사람이나 나나 모두 바쁘다는 핑계였지만 요즘 같아서는 김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앞선다. 맛있는 반찬이 널렸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김장김치가 바닥을 드러내고도 한참 지났을 시간이지만 봄·여름·가을을 거쳐 겨울이 됐는데도 여전히 김치냉장고 안에는 손도 안댄 김장김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내가 잘사는 건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그때는 달리 해먹을 반찬이 없어 겨우내 김장김치만 축냈다. 네 식구면 보통 100포기는 했던 것 같은데 김치에 쓸 채소가 나오기도 전에 동나기 일쑤였다. 먹을 쌀도 풍족하지 않아 밀가루로 칼국수며 수제비로 때우는 날이 부지기수였지만 거의 유일한 반찬인 김치가 떨어지면 참 난감한 상황이다.
바닥을 드러낸 김칫독을 바라보며 곤혹스러워 하던 어머니의 한숨소리가 선하다. 몇 포기 안 되는 올해 김장은 처형이 손을 보탰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절인 배추 나르고, 소 넣는 것 흉내 내는 정도다. 집사람과 김장을 한 지 2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낯설다.
김장을 하다 문득 김장과 국민연금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혹독하고 긴긴 겨울을 지내기 위해 먹을거리를 만들어 대비하는 것이나, 은퇴 후 이렇다 할 벌이가 없는 노년에 대비해 연금을 들어놓는 것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가끔 길을 지날 때 힘겹게 폐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푼돈을 모아 좋은 일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 놀이 삼아 하는 분들도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많은 노인들은 준비 없이 노후를 맞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연금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놈의 연금이라는 게 좀 풍족하게 주면 좋은데 용돈 정도라는 데 문제가 있다. 정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급여가 아니라 용돈 수준의 ‘용돈연금’이라는 얘기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는 모두 447만 여 명에 달하지만 이들의 월평균 연금액은 37만7천여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용돈 수준이다. 그래서 개인연금 없이 오로지 국민연금에 노후를 맡긴 것이 늘 걱정이다.
일반적으로 은퇴 후 손에 쥘 수 있는 급여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이다. 국민연금은 소득에 따라 연동돼 소득이 적은 사람은 용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신 수익이 많은 사람은 은퇴 후에도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소득의 일정 비율을 급여로 받는 것이 소득대체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소득대체율 45~50% 상향 또는 현상 유지와 함께 보험료율 12~15%로 인상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퇴짜를 놨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을 합쳐 월 100만 원 안팎의 연금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4가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놓았다.
1안과 2안은 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을 30만~40만 원으로 올리는 안이고 3안과 4안은 기초연금도 올리고 소득대체율과 보험료도 올리는 안이다.
문제는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뒷받침할 재정이 충분하냐는 것이다. 현재 40%인 소득대체율과 9%인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국민연금은 2065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정부가 보증한다고는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입장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제시되는 것이 쌓아두고 지급하는 지금의 ‘기금방식’이 아닌 그해 걷어서 지급하는 ‘부과방식’이다. 모자라면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발상이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설계 당시부터 기금 고갈을 전제로 한 것이고 장기적으로 부과방식을 염두에 뒀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불안정한 인구구조 때문에 미래세대의 부담만 키우는 기형적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은퇴 후 연금을 받게 될 세대는 고령화로 늘어나는 반면 이를 부담할 미래세대는 저출산으로 줄고 있어서다.
기초연금을 올리는 것 역시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이다. 보험료를 그대로 둔 채 소득대체율을 올리겠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마치 증세 없는 복지와 같은 말이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인가. 그것도 말로 하는 정책이 아닌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정책에서 말이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든 국민들이 노후만큼은 편하게 살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근로능력이 있을 때 더 부담할 용의도 있다. 용돈을 넘어 그저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살 수 있는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 말이다.
먼 훗날 풍족하지는 않지만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연금을 받으며 집사람과 여유있는 노후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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