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
작성자 : 김연욱
작성일 : 2008.08.29 04:51
조회수 : 1,270
본문
트럭 운전을 하시던 아빠와
그런 아빠만 믿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가시던 엄마.
엄마는 우리 네 남매에게 늘 아빠의 고생을
마음에 새기며 무엇이든 절약하고
무엇이든 감사하라는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고 또 하셨다.
추운 겨울 아버지가 일하시느라
트럭에서 얼음 잠을 청하실 때면 암마는
"아빠가 밖에서 고생하시는데
어떻게 집에 있는 식구들이
따뜻한 방에서 편히 잘 수 있겠니."하며
연탄 아궁이 구멍을 막으셨다.
그리고 그 차가운 방 하나에서
온 식구가 잠을 청했더랬다.
유독 추위에 약했던 나는 엄마 몰래
연탄아궁이 구멍을 열어 놓기도 했지만
아침이면 여전히 차디찬 방바닥에
웅크리고 자는 우리를 발견하곤 했다.
잠자리를 준비할 때마다 셋째 동생은
베개를 한 줄로 나열하고 식구들에게
자신의 베개를 찾아가 누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있으니
마치 산적을 부쳐 놓은 것 같네.
거기 당근! 다리가 왜 그리 짧지?"라고
키가 작은 엄마를 놀리기도 했다.
작은 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복닥거리며 생활한 탓에
늘 "나만의 공간"을 갈망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것이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각자의 가정에서
우리를 닮은 아이들의 엄마가 된 지금
우리는 문득 일부러 손을 뻗지 않아도 손끝으로
가족의 체온을 느낄 수 있던 그날의
작고 추운 방을 그리워한다.
동생 다리에 가위가 눌리기도 하고
화장실 가던 동생 발에 밟히며
어렵게 잠을 청하던 그 시절
어쩌면 엄마는 굳이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오랫동안 서로의 체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1992년 12월 몹시 춥던 어느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넓지도 않던 그 방 한구석에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빈 자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아파했다.
엄마에게 슬픔을 더하지 않으려
어린 동생들에게 아픔을 더하지 않으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야 했던 날들
차라리 그땐 함께 하지 않으면 좋았으련만
여전히 우리는 작은 방에 함께 있었다.
어릴 적 따스했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요즘도
아이들과 머리를 나란히 한 채 잠이 든다.
가족이란 형제자매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넓고 풍요로워서가 아니라
작고 소중해서 더 가까워지는 사이
작고 추웠던 방 한 칸의 행복이 떠오를 때면
내가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그 시절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오늘은 감사해야 할 일을
가슴 속에 적어 보아야겠다.
==좋은 생각 중에서==
그런 아빠만 믿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가시던 엄마.
엄마는 우리 네 남매에게 늘 아빠의 고생을
마음에 새기며 무엇이든 절약하고
무엇이든 감사하라는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고 또 하셨다.
추운 겨울 아버지가 일하시느라
트럭에서 얼음 잠을 청하실 때면 암마는
"아빠가 밖에서 고생하시는데
어떻게 집에 있는 식구들이
따뜻한 방에서 편히 잘 수 있겠니."하며
연탄 아궁이 구멍을 막으셨다.
그리고 그 차가운 방 하나에서
온 식구가 잠을 청했더랬다.
유독 추위에 약했던 나는 엄마 몰래
연탄아궁이 구멍을 열어 놓기도 했지만
아침이면 여전히 차디찬 방바닥에
웅크리고 자는 우리를 발견하곤 했다.
잠자리를 준비할 때마다 셋째 동생은
베개를 한 줄로 나열하고 식구들에게
자신의 베개를 찾아가 누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있으니
마치 산적을 부쳐 놓은 것 같네.
거기 당근! 다리가 왜 그리 짧지?"라고
키가 작은 엄마를 놀리기도 했다.
작은 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복닥거리며 생활한 탓에
늘 "나만의 공간"을 갈망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것이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각자의 가정에서
우리를 닮은 아이들의 엄마가 된 지금
우리는 문득 일부러 손을 뻗지 않아도 손끝으로
가족의 체온을 느낄 수 있던 그날의
작고 추운 방을 그리워한다.
동생 다리에 가위가 눌리기도 하고
화장실 가던 동생 발에 밟히며
어렵게 잠을 청하던 그 시절
어쩌면 엄마는 굳이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오랫동안 서로의 체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1992년 12월 몹시 춥던 어느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넓지도 않던 그 방 한구석에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빈 자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아파했다.
엄마에게 슬픔을 더하지 않으려
어린 동생들에게 아픔을 더하지 않으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야 했던 날들
차라리 그땐 함께 하지 않으면 좋았으련만
여전히 우리는 작은 방에 함께 있었다.
어릴 적 따스했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요즘도
아이들과 머리를 나란히 한 채 잠이 든다.
가족이란 형제자매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넓고 풍요로워서가 아니라
작고 소중해서 더 가까워지는 사이
작고 추웠던 방 한 칸의 행복이 떠오를 때면
내가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그 시절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오늘은 감사해야 할 일을
가슴 속에 적어 보아야겠다.
==좋은 생각 중에서==
댓글목록 0
정흥수님의 댓글
79회로 퍼 가겠습니다.. 선배님..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