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한동식(83회)[데스크칼럼]/수처작주隨處作主)(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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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8. 5.28)
수처작주隨處作主)
/한동식 사회부장
▲ 한동식 사회부장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지금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라는 의미다. 살아오면서 늘 바라고 소원한 것 같다. 어릴 적 동네 한구석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이번에는 꼭 저 놈의 딱지를 넘기게 해달라’는 젖비린내 나는 간절한 바람에서부터 입시와 취직, 결혼, 승진, 건강 등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바람으로 나이를 먹은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지천명을 넘긴 지금도 여전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요즘은 이러저러한 것보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소원이자 바람이다. 어떤 것보다 쉽지 않은 희망사항이다. 필요하다는 가치는 존재와 시각에 따라 각각이기 때문일 게다.
필요의 가치는 꼭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일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원치 않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머무는 조직에 이로운 것이 아니라 피해를 주는 적(敵)이 되는 셈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나 스포츠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축구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주말 늦게 중계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EPL)를 찾아본다. 손흥민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곳에서 한국선수가 두각을 내기는 쉽지 않을 터인데 발군의 실력을 뽐내는 것을 보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어깨가 들썩여진다. 최근 열린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오랜 라이벌 관계인 맨유와 아스널의 경기 얘기를 하려고 손흥민까지 끌어들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명장으로 꼽히는 맨유의 무리뉴 감독과 아스널의 아르센벵거 감독이 맞붙은 경기다. 올 시즌까지만 아스널을 맡겠다고 선언한 벵거 감독의 마지막 올드트래포드(맨유 홈구장) 방문이었다. 1대1로 팽팽히 맞서던 경기는 후반 종료 직전 맨유가 결승골을 넣으며 또 한 번의 승리를 낚았다. 이날 맨유팬들은 ‘영원한 악당’으로 불리는 벵거 감독에게 조롱으로 화답했다.
1대0으로 이기던 전반과 2대1 역전을 이뤄낸 후반 종료 직전 뱅거 감독을 향해 노래를 하나 불렀다.
‘아르센 벵거, 우리는 당신이 아스널에 머물길 원한다(Arsene Wenger, We want you to stay)’ 아스널을 떠나지 말고 계속 있으면서 맨유에게 패배를 헌납하라는 조롱이다. 노랫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조롱이다. 아스널 팬들에게도 하루라도 빨리 벵거가 떠나고 새로운 감독이 부임해 맨유의 높아진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고대할 것이다. 이날의 패배가 그들에게는 치욕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조롱가가 불릴 만한 일이 있다. 요즘은 좀 잠잠해졌지만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 얘기다. 남북정상회담을 ‘위장 평화회담’이라거나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있다’, 심지어는 ‘차기 대통령은 김정은이 되는 거 아니냐’는 등 입만 열면 막말이 튀어나와 같은 당 인사들도 혀를 내두르는 형국이다.
얼마 전 창원에서는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고 말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오죽 했으면 한 보수인사는 홍준표 대표를 향해 "보수당을 궤멸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같은 당 인천시장 후보인 유정복 인천시장은 "제1야당 대표가 국민 생각과 동떨어져 몰상식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국민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엄중하게 꾸짖기도 했다.
홍 대표의 과격한 발언이 당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방선거에 나선 인사들은 홍 대표가 지원유세라도 나설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정도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조롱가가 나올 만 하다. ‘홍준표, 우리는 당신이 자유한국당에 머물길 원한다.(Hong Jun-pyo, We want you to stay)’
어찌 스포츠와 정치권의 얘기에만 그치겠는가. 떠날 때 박수는 아니더라도 조롱은 받고 싶지 않다. 모두에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머무는 조직에서 만큼은 필요한 존재이기를 바라고 소망한다. 조직의 주인으로서 꼭 필요한 존재가 돼야 하지만 자꾸 돌이켜보게 된다. 내가 필요한 존재였던가?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을 했던가? 자문에 대한 대답은 자괴감이다. 노력과 이해도 부족했고 또 낮추려고 하지 않는 교만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2018년 05월 28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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