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한동식(83회)[데스크칼럼]/후회하거나 행복하거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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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8. 8. 9)
후회하거나 행복하거나
/한동식 편집국 부국장
▲ 한동식 편집국 부국장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속편인 ‘신과 함께-인과 연’이 개봉되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어차피 인간은 영원히 살 수는 없는 존재다. 과학이 발달해 생명연장의 꿈이 이뤄진다고 해도 100살을 겨우 넘기는 것이 고작일 게다. 돈과 권력으로 불노초(不老草)를 구해본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다. 그래 봐야 100살 안팎이다. 그래서 사후세계에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사후세계는 과연 어떤 세상일까?
종교에 근거했겠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사후세계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거짓, 나태, 불의, 배신, 폭력, 살인, 천륜 등에 대한 재판을 치른다고 한다. 그것도 언제 불지옥에 떨어뜨릴지 모르는 염라대왕 앞에서 말이다. 재판을 통과한 망자(亡者)만이 다음 생에서 환생한다.
통과 못한 이들은 살아오면서 지은 죄에 따라 거짓지옥, 나태지옥, 불의 지옥, 배신지옥, 폭력지옥, 살인지옥, 천륜지옥 등에서 죄가 씻길 때까지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 한다. 어찌 보면 저승은 곧 지옥인 셈이다. 그래서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착하게 살걸 그랬네요." 죽은 자들의 세상인 저승에 들어간 망자들이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심판자인 염라대왕 앞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나 소설 속 얘기겠지만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며 서 있다고 가정할 때 나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말을 할까? 아마 "살려 달라"고 "더 착하게 살 테니 조금만 더 살려 달라"고 애원할지도 모르겠다. 후회와 뉘우침으로, 삶에 대한 아쉬움과 간절함을 담아 매달릴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도 후회하겠지만 살면서 늘 후회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때 그 후회는 더 크다.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았다. 암 판정과 수술 사이의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수술대에 올라서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죽음에 대한 부정과 공포,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생겼느냐는 분노와 후회 등을 반복했다.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지만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까지 분노와 후회를 거듭했다.
그리고 살아온 삶의 기억들을 정리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이 후회였다. 조금만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양보하면서 사랑할 수 있었는데. 왜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했는데 뚜렷하게 이뤄놓은 것도 없었다.
친구의 중요성은 죽을 때가 돼야 깨닫는다고 했던가. 돈이나 명예보다 진정한 친구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과도 제대로 된 우정을 나누지 못했다. 가장 소중한 가족들에게도 충실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을 똑 부러지게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쳇바퀴 돌 듯 매너리즘에 빠져 오갔던 아쉬움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후회였다. 다행히 수술이 잘 돼 지금은 건강을 많이 되찾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두려움이다.
나처럼 죽음을 앞두거나 죽을 수 있다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삶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하나보다. 미국의 말기 암환자 병동에서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을 간호한 ‘브로니 웨어’는 지난 2013년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무엇을 후회하는지를 기록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5가지 후회」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1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29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웨어는 죽음을 앞둔 이들 대부분은 5가지를 공통적으로 후회한다고 적고 있다.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았던 점 ▶ 일만 너무 열심히 했던 점 ▶감정을 용기 있게 표현하지 못했던 점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점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점 등이다.
말기 암환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후회일 게다. 건강할 때 후회 없이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지 않은 게 또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시인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처럼 행복한 사라짐을 준비하겠다.
이 세상을 소풍처럼 놀러왔다 돌아가는 것처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답은 용기 있게 지금의 삶을 즐기며 행복해하는 것 아닐까 싶다. 8월의 어느 무더운 날에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채울까 고심하며 적어본다.
2018년 08월 09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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