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지용택(56회) 칼럼/광무 120년을 다시 생각한다(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7.12.13)
[지용택 칼럼] 광무 120년을 다시 생각한다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 독립문.
금년 한 해는 다사다난하다고 말하기엔 역사적으로도 기록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일년이었다.
1895년 을미년에 일어난 사건을 교과서에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변이 아니라 을미왜란(乙未倭亂)이었다. 10월8일 밤, 일본의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공사 지휘 아래 무장한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했고, 이 과정에서 궁내부 대신 이경식(李耕植)을 비롯해 궁궐을 수비하던 훈련원 연대장 홍계훈(洪啓薰)과 수많은 조선 장졸들이 전사했다.
고종은 4개월간 일본의 포로 상태로 연금되어 있다가 다음해 1996년 2월11일 경복궁을 탈출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한다. 우리는 이것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고 배웠지만, 사실 이것은 아관망명(俄館亡命)이라고 해야 타당하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을 등에 업고 형성된 친일내각 총리인 김홍집(金弘集, 1842~1896)을 비롯해, 어윤중(魚允中, 1848~1896) 등은 군중에게 살해되고, 유길준(兪吉濬, 1856~1914)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때 김구(金九, 1876~1949) 선생, 아니 청년 김창수는 황해도 안악 치아포에서 조선인으로 변복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을미사변의 공범 미우라 고로로 오인하여 살해한 뒤 인천에 수감된다.
같은 해 11월2일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독립문이 세워졌다. 이것은 중국에 대한 장구하고도 전통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조선왕조가 마침내 홀로 일어서는 서막이었다.
고종은 자신의 아내인 명성왕후가 왜인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고 경복궁을 탈출할 때까지의 4개월 그리고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여의 망명생활 기간 동안 치욕과 자괴감(自愧感)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는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무르는 망명 기간 동안 러시아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 800명의 정예 부대를 양성하여 1897년 2월경 마침내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으로 환궁한다. 1897년 10월12일 어전확대회의에서 고종은 스스로 나라 이름을 대한(大韓)으로 정했다.
그는 "한(韓)이란 이름은 우리 고유한 나라 이름이며 우리나라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원래의 삼한을 아우른 것이니 큰 이름이 적합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 연호를 버리고 새롭게 연호(年號)를 광무(光武)로 제정한다. 이는 중국에 예속되었던 옛 시간을 버리고 한국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삶과 생활을 시작한다는 상징이었다.
이것은 태조 이성계가 1392년 7월17일 즉위한지 505년만의 쾌거였다. 길고도 긴 반천(半千) 년만의 꿈에서 깨어나 굴종의 기미정책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독립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스스로의 시간을 되찾아 삶의 주인이 되자
나는 조선왕조나 고종 황제를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국 나라를 잃어 산하를 헐벗게 하고 백성을 노예로 만들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조선궁궐에서 왜군에 의해 왕후가 죽은 을미왜란, 아관망명에도 좌절하지 않고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대오각성(大悟覺醒)하고 탈태환골(奪胎換骨)하는 용기와 저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120년전 조선은 505년의 고삐를 벗어던지고 대한제국으로 거듭났다. 또한 전에 없던 광무라는 새로운 연호를 처음으로 제정했다. 이것은 중국 시간, 중국 세상을 벗어나 한국의 시간 속에서 어진 백성이 사는 시작이었다.
2017년 올해는 당시 여당의 다수 의원들도 합세하여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조선 왕조 사상 두 번 있었던 반정(反正)이거나 쿠데타가 아니었다.
합법적인 헌법기관을 통과한 결정이며 대세였다. 그토록 어려운 일을 치렀으나 피 흘리지 않았다. 이와 같은 결과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우리 곁에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 남아있다. 미국 정부의 해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1994년 당시 클린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전쟁 발발 3주만에 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명이 전사한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취소한 결정적 이유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반도 창생(蒼生)이 모두 사멸의 위기에 처할 뿐만 아니라 팔도강산이 빈틈없이 초토(焦土)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년 한 해 동안 미국 대통령과 북한은 이미 말로 전쟁을 치렀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서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 후손들에게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 위기에 처했다. 이 기회를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만드는 슬기와 단결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우리는 IMF 국제통화기금에서 빚을 얻어 경제 정책 주권을 상실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금모으기운동 등으로 경제위기를 조기 극복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
광무 120년을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의 시간을 되찾고,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 이 위기와 난관을 극복하고, 민족번영과 평화통일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17년 12월 13일 00:05 수요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