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친구에 대하여
작성자 : 김연욱
작성일 : 2007.12.10 05:08
조회수 : 1,130
본문
이름 석 자 알고 있는 사이라고 해서
다 친구라고 말할 수 없다면 적어도
친구라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기쁨과 슬픔,즐거움과 고통,
의리의 보따리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인이 되신 "함 석헌" 님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만릿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고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시의 본문 내용처럼
먼 길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친구에게 맡겨 두고
보살펴 주기를 부탁하며
떠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과연 이 시대에 있을 것이며
침몰하는 현대판 타이타닉호를 탄
죽음의 현실 앞에서
하나뿐인 구명대를 양보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겠습니까?
"친구여! 나는 죽어도 좋으니
자네가 살아야 하네"
이런 아름다운 우정이 존재한다면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인격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 수 있다는 것도
그런 뜻일 것입니다.
이기주의적 삶의 길을 걸으며
의리와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사람의 곁에
향기로운 친구가 없다는 것은
벌과 나비가 찾아 들지 않는
시들어 버린 인생의 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의 친구도 없이
골방에 갇혀 혼자만의 삶을 즐기면서
나는 너희들 하고 같이 교재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정신적 수술이 시급한
환자라고 할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자신을 안다는 것,
이것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없지만
우리들의 눈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들보는 감추고
남의 티를 찾아 내는 데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인격에서 향기가 난다면
그에게는 향기를 품은
동질의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고
쓰레기통 같은 악취가 난다면
썩은 것을 좋아하는
어두운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친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친구
한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터 놓고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아무도 모르는
가슴 속 깊이 묻은 비밀을 털어놓아도
그 비밀을 목숨처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자신을 안다는 말은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물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겸손하지 않고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좇아
친구를 배신하고 쉽게 버립니다.
그런 경험을 우리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수 없이 많이 보고 들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우정을 버리고
혼자 살길을 찾아가지 않는
그런 친구를 곁에 두고
함께 울고 웃는 복된 삶을 삽시다.
==손 희락의 엣세이 집에서==
다 친구라고 말할 수 없다면 적어도
친구라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기쁨과 슬픔,즐거움과 고통,
의리의 보따리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인이 되신 "함 석헌" 님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만릿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고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시의 본문 내용처럼
먼 길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친구에게 맡겨 두고
보살펴 주기를 부탁하며
떠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과연 이 시대에 있을 것이며
침몰하는 현대판 타이타닉호를 탄
죽음의 현실 앞에서
하나뿐인 구명대를 양보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겠습니까?
"친구여! 나는 죽어도 좋으니
자네가 살아야 하네"
이런 아름다운 우정이 존재한다면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인격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 수 있다는 것도
그런 뜻일 것입니다.
이기주의적 삶의 길을 걸으며
의리와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사람의 곁에
향기로운 친구가 없다는 것은
벌과 나비가 찾아 들지 않는
시들어 버린 인생의 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의 친구도 없이
골방에 갇혀 혼자만의 삶을 즐기면서
나는 너희들 하고 같이 교재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정신적 수술이 시급한
환자라고 할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자신을 안다는 것,
이것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없지만
우리들의 눈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들보는 감추고
남의 티를 찾아 내는 데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인격에서 향기가 난다면
그에게는 향기를 품은
동질의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고
쓰레기통 같은 악취가 난다면
썩은 것을 좋아하는
어두운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친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친구
한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터 놓고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아무도 모르는
가슴 속 깊이 묻은 비밀을 털어놓아도
그 비밀을 목숨처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자신을 안다는 말은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물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겸손하지 않고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좇아
친구를 배신하고 쉽게 버립니다.
그런 경험을 우리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수 없이 많이 보고 들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우정을 버리고
혼자 살길을 찾아가지 않는
그런 친구를 곁에 두고
함께 울고 웃는 복된 삶을 삽시다.
==손 희락의 엣세이 집에서==
댓글목록 0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감사 합니다 정말 그렇군요 두루 경험이 있어 많은 느낌을 갖고 계시리라 추측 합니다 창리 벌판 겨울 바람 매서웠는 데 어떤가요 매 한가지 이겠죠
김연욱님의 댓글
겨울 바람이 아무리 매섭다 해도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이라면, 북풍한설 찬 바람도 훈풍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마음이 차가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냉기가 돌게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