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탄핵보다 더 고민해야 한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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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12.13)
탄핵보다 더 고민해야 한다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이 나라 대통령이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되면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대의권(代議權)을 부여받은 여의도 국회가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탄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종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엄중하게 물어야 할 바가 있다. 어찌하여 대한민국의 고위관료와 검사들, 국가정보원의 국가 엘리트들이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헌정파괴에 저항하지 않았을까? 집권당의 소위 친박들이 왜 최순실을 감싸고 돌았을까? 지성의 대명사인 교수들이 최순실의 딸에게 부정 입학을 용인했을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수십억 원(그들에게는 껌 값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을 내놓은 굴지의 재벌들, 그 가운데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 삼성은 남몰래 상납하는 음습한 거래까지 서슴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이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이 탄핵이라는 절차에 묻혀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묻고 또 묻고 밝혀야 한다.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으면 제2의 박근혜, 제3의 박근혜는 분명코 재등장할 것이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충격적으로 우리가 확인한 바는 대통령이라는 인물의 ‘백치성’이었다. 누구처럼 잔혹한 독재자도 아니고, 능수능란하게 술수를 발휘하거나 좋은 덕목을 소유한 인물은 더 더욱 아니다. 그저 성형(설), 피부 관리, 공주놀이에 어설픈 사이비 교주의 꼭두각시 같은 짓이나 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정도의 인물에게 이 나라 최고엘리트 상당수가 부화뇌동했다.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켜야 할 임기를 몇 달 더 연장시켜 보려고 발버둥쳤다. 죄송하지만 몰랐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비서실장, 무능력자처럼 자신을 위장하면서 법망을 피하기에 급급한 수준의 참모들 때문에 ‘에러’가 난 건 아닌데.
왜 그랬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동맹이 영속되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에 의하면 청와대의 문고리 비서관과 행정관은 국가 기밀문서를 열심히 한 강남 아줌마에게 갖다 바쳤다. 그들이 모시는 권력이 2017년 2월 24일이면 끝난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 그랬다. 마찬가지로 국가 엘리트들도 시한부 권력임을 몰랐을 개연성은 전혀 없다.
더구나 당대의 최고 작가 가운데 하나는 "100만이 나왔다고, 4천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 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느냐"는 우습지도 않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지배동맹의 영속성을 믿는 세력들이 염려하는 건 나날이 커져가는 분노한 민심이 대통령을 넘어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헌정파괴를 기획했거나 방조한 부역자의 모습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사회 기득권 집단의 구조적 비리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 집권당이 대의성을 잃은 껍데기 대의제일 수 있다는 민중의 자각이 진정 두렵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건 과연 뭘까? 200만 촛불이 광화문에 머물지 않고 365일 국민주권이 피어나는 세상으로 바꾸지 못할까 걱정해야 한다. 우리 정부기관에 쌓인 지식과 전문성, 엘리트 관료, 공동체를 이끄는 절차와 제도, 감시와 견제장치들이 주는 믿음과 권위가 송두리째 붕괴되는 걸 염려해야 한다.
이번의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는 걸 걱정하거나 부결되는 걸 염려할 필요는 없다. 어찌 되든 중간 경로만 다를 뿐 구체제의 해체라는 길로 통할 것은 정해진 바다. 거대한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일엽편주처럼 ‘백치성’의 주인공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박근핵닷컴’ 이상으로 ‘박근혜이후닷컴’을 준비해야 한다. 야당이 이 역사적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다시 자신의 기본 임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인물을 내세우고 이를 이용하려는 후안무치한 자들이 득세하지 못하게 하려면 배워야 하고 따져봐야 한다.
지금의 대의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민중의 상식이 꽃피는 제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절망과 분노를 남겨주지 않으려면.
2016년 12월 13일 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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