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속수지례(束脩之禮)와 차(茶) 한잔(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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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10.17)
속수지례(束脩之禮)와 차(茶) 한잔)
/원현린 주필(主筆)
▲ 원현린 주필(主筆)
부정부패 만연으로 혼탁한 사회를 청렴사회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입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 청탁금지법 )’이다. 본 법이 시행된 지도 오늘로 20일을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명쾌한 법령 해석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소통은커녕 공직자들이 청탁금지법의 저촉을 들어 대민접촉을 꺼리고 있는 정황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공직자들이 복지부동하거나 무사안일 태도로 일관, 꽉 막힌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필자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일선 학교에서 교사들을 대상을 실시한 세칭 ‘김영란법’ 연수자료를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교사와 한잔의 차도 나눌 수 없다는 항목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스승의 날이 돌아와도 스승에게 카네이션 꽃 한송이도 달아드릴 수 없다고 한다.
청탁금지법의 목적은 제1조에서 천명한대로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캔커피 하나와 한잔의 차도 본 법이 정한 ‘금품 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본 법은 ‘금품 등’을 열거한 항목 중에 "음식물·주류·골프 등의 접대·향응 또는 교통·숙박 등의 편의 제공"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한잔의 차를 나누는 행위가 상기 항목 중 음식물 접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사제지간에 나누는 차 한잔이 실정법에 저촉된다는 예는 일찍이 보고 듣지 못했다.
설사 스승과 제자가 한잔의 차를 나눈 행위가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 해 누군가에 의해 고발된다 해도 범죄 성립 요건 중의 하나인 위법성이 조각될 것이라는 것이 법률가인 필자의 한 지인의 해석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건네는 선물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속수(束脩)의 예 이상을 행한 사람이면 내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했다. 예전에는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으려 할 때 필히 예물을 지참하는 관습이 있었다. ‘속수 ; 소금에 절여 말린 포(脯)’는 그러한 예물 가운데 가장 가벼운 것으로서 오늘날의 입학금에 해당한다. 공자 당시에는 예물로 일국의 군주(君主)면 보석, 대부(大夫)면 양, 사(士)는 꿩, 서인(庶人)은 거위, 공상인(工商人)은 닭을 지참하는 것이 상례였다고 한다.
필자가 언젠가 한번 서민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인 고액의 대학 등록금을 거론하면서 ‘속수지례(束脩之禮)’정도의 예만 갖추면 대학 입학을 허(許)하라고 촉구했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한 번 인용해봤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신고 접수 1호가 교수에게 캔커피 하나를 건네드린 것이라 한다. 실로 엄청난 하나의 고발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악습과 폐습은 의당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스승의 날에 사제지간이 차 한잔 나누는 것이 악습과 폐습인지는 모르겠다. 사제지간에 차 한잔도 나누지 못하는 무서운 사회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깨어진 신뢰의 원칙이다. 지식인과의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상아탑이 지성의 요람이기는커녕 불신과 냉소만이 감도는 차가운 캠퍼스가 돼 가고 있다.
끊임없이 지식인과의 대화는 이어져야 한다. 한창 스승으로부터 지식과 인격을 전수받아야 할 학생들이다. 마른 흙덩이에 물이 닿으면 서서히 젖어드는 것과 같이 그렇게 지식은, 인격은 함양(涵養)되는 것이다. 사제지간에 지식과 인생의 경험을 전수하는 신성한 자리에 놓인 차 한잔 사이를 법망이 가로막는다는 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법의 목적, 정의(正義·Justice)일까?
법은 지켜져야 한다. 준수되지 않는 법은 법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도(茶道)조차 금지하는 법이 무엇을 도모하려는 것인지 도통 이해키 어렵다. 이는 마치 서원(書院)에서 붓글씨를 배우면서 묵향이 나지 않는 먹을 사용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묵향과 차향 속에서 지성이 피어 오른다.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한잔의 차(茶)는 허(許)하라.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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