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항저우에서 ‘제갈량의 공성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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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 9.21)
항저우에서 ‘제갈량의 공성계’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역사소설가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
손자병법에 보면 싸울 때마다 이기는 백전백승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36計 병법」에서 16번째 ‘욕금고종’을 보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에게 결사적으로 덤비기’에 적을 잡기 위해서는 일부러 그에 대한 공격을 느슨하게 함으로써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나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첩경이라는 말인데 국가 안보와 외교에서는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다.
지난번 G20이 열린 중국의 항저우는 옛날 시인 묵객들이 ‘하늘에는 천당, 지상에는 쑤저우·항저우(上有天堂 下有蘇杭)’라고 동경해마지 않았던 저장(浙江)성의 대표적인 도시로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 35명을 맞아 들였다.
그들 지도자들은 바로 ‘싸우지 않고 승리하며, 상대에게 명분과 체면을 주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하려 모인 것이었다. 주최국 중국은 이곳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상상을 뛰어넘는 모든 조치를 강구했다. 삼엄한 경비와 보안심사, 엄격한 교통통제는 당연했고, 도시 주변 300km 이내에 있는 공장은 1주일 전부터 가동을 중지시키는가 하면 각급 학교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도심 거주자에게 1주일의 임시휴가와 함께 여행상품권을 대대적으로 선물해 무려 200만 명이 외지로 떠났다고 한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완벽하게 도심을 비웠다"는 평가와 함께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속내에서 항저우를 택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소식이다.
사실 항저우(杭州)는 시진핑 주석에게 정치적 고향이다. 이곳에서 그는 대리성장과 당서기로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결국 베이징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됐고 오늘의 지위까지 올랐다. 항저우에서 베이징까지는 시 주석의 리더십이 화려하게 꽃핀 역사인 셈이다. 이곳에서 때 아니게 ‘제갈량의 공성계’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제갈량의 공성계가 지닌 매력이랄까, 핵심적인 부분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상대의 허실을 파고들어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났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0만이 넘는 상대 병력을 고작 몇 천 명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니 정말 대단하게 평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원래 G20이 안보 이슈보다는 경제 이슈를 논의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최근의 국제 정세에서 중국은 남중국해 갈등과 북핵 문제에 있어 국제적인 역할을 패권주의 내지는 방치하는 듯한 자세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이번 항저우의 G20에서는 이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고 공동선언에서도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었다.
우리의 경우, 중국 외교부가 아무리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공세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 북한은 비핵화 약속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정세를 악화시키는 어떤 행동도 중단하라"고 성명을 발표해도 믿기가 어렵다. 북한 권력 집단의 명줄을 쥐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 아닌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바다. 하지만 중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가로막거나 지체시켜 왔다.
지난번 4차 핵실험 후 중국이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결국 거부했다. 물론 중국은 망나니 같은 북한이라고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이 일어나면 ‘유관 당사국의 자제’라는 어설픈 양비론을 펴고 우리의 정당한 조치들을 압박할 것이다. 선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 중국에 대해 서방 외교가가 제갈량의 공성계 운운한 것이 우리를 겨냥한 건 분명 아닐 테지만 이번 G20에서 혁신과 신산업혁명, 디지털 경제에 대한 논의 결과 ‘혁신적 성장을 위한 청사진’이 중국의 처방전이라고 치켜세운 점 역시 미·일의 안보 협력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다. 경계할 일이다.
2016년 09월 21일 수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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