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예서 멈출 순 없지 아니한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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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
예서 멈출 순 없지 아니한가!
/원현린 주필<主筆>
▲ 원현린 주필
"옛날의 시장(市場)이란 자기에게 있는 물건과 없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던 물물교환의 장소였다. 유사(有司)들은 다만 이것을 다스리는 일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못난 사나이가 있어 남을 물리치고 자기를 유리하게 할 수 있는 우뚝 높이 솟은 언덕(壟)을 찾아 올라가 여기저기를 둘러보아 시장의 이익을 독점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천박하게 여겼다. 유사도 그에게 세금을 물렸다. 장삿군에게 세금을 물리게 된 것은 이 천박한 사나이로부터 시작됐다(古之爲市者 以其所有로 易其所無者어든 有司者治之耳러니 有賤丈夫焉하니 必求龍斷而登之하야 以左右望而罔市利어늘 人皆以爲賤故로 從而征之하니 征商이 自此賤丈夫始矣니라)."
‘농단(壟斷)’의 출처 <맹자(孟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출전(出典)에서 보이는 것처럼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나라의 망국(亡國) 뒤에는 반드시 국정을 농단하는 자들이 늘 있어왔다. 진시황(秦始皇)이 죽음을 앞두고 "돌아와 나의 상사(喪事)에 참석하고 함양에 모여 상례를 거행하고 안장하라"는 내용의 옥새가 찍힌 친서를 공자(公子) 부소(扶蘇)에게 보내게 했다. 하지만 조서는 새서(璽書)의 업무를 겸임하는 중거부령(中車府令) 환관 조고(趙高)의 수중으로 들어가 사자에게 건네지기도 전에 시황은 세상을 떠났다.
황제의 죽음을 아는 자는 승상 이사(李斯), 공자 호해(胡亥)와 조고, 환관 5∼6명뿐이었다. 이들은 음모해 조서의 내용을 바꿔 호해를 태자로 세웠다. 호해가 부황의 상을 치른 후 제위에 올라 2세 황제가 됐다. 농단을 부려 정권을 장악한 조고는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군신(群臣)들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시험해보려고 사슴 한 마리를 끌고 가 2세에게 바치며 말했다. "이것은 말입니다" 2세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오? 사슴을 말이라고 하다니" 2세가 측근의 신하에게 묻자, 침묵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고 조고에게 아부하여 말이라고 대답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사슴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후 조고는 사슴이라고 대답한 자들을 은밀히 법망에 걸어 처벌했다. 국정농단의 대표 사례로 인용되곤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이야기다.
최순실이라는 한 필부(匹婦)가 부린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결딴나고 있다. 국가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국정은 붕괴되고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에 가득차 있다. 심지어 헌정중단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국민들의 성난 민심은 그 노도(怒濤)의 파고를 더해 가고있다.
고개 숙이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국민은 없을 게다. 하지만 정치는 이미 동력을 상실해 한발자국도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정부는 식물정부가 되어 국정이 마비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지도력은 상실됐다. 국격(國格)도 그 품위를 잃었다. 당장의 현안인 외교와 국방, 경제 등 산적한 제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그저 허탈하고 참담할 뿐이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온통 황충(蝗蟲)의 무리들로 넘쳐나고 있는 정가(政街)다. 자리에 걸맞지 않는 자들이 정부 요직에 앉아 국정을 농단, 막중 국사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국정농단 사태는, 그 인사권자가 강을 건넜는데도 배를 버리지 못하고 구래(舊來)의 사슬에 얽매이는 어리석음이 낳은 결과라 하겠다. 정부는 그동안 줄곧 기회 있을 때마다 소통과 쇄신, 유신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태어나기는커녕 부패만 키워왔다. 사회 어느 한 곳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곳이 없다.
공직자는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자격상실이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하여 다듬을 수 없다고 했다. 한시바삐 썩은 부위는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나도록 해야 하겠다.
필자는 누차에 걸쳐 정치인을 향해 ‘사가(史家)를 의식하라’, ‘역사(歷史)가 굽어보고 있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역사의 눈을 두려워하라고 강조해왔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후세 사가들이 오늘의 우리 역사를 여하히 기록하고 있을까 두렵기만 하다. 어떻게 이어내려온 우리 역사인가. 예서 끝낼 순 없지 아니한가!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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